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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원연구소공감]대표 :: 세종이야기꾼 :: 실록연구자 :: 소통 디자이너 :: 010-8014-7726 :: chewonoh@gmail.com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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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상을 물리고 친척들이 다 돌아간 후, 부모님은 '극장 구경'을 가셨다.

많은 집들이 그러하겠지만 아빠와 엄마는 영화 취향이 다르다.

아니, 취향을 논하기 전에, 아빠는 영화에 별 관심이 없다.

종종 혼자서도 극장에 갈만큼 영화를 좋아하시는 엄마를 따라, 아빠는 대체로 1년에 한 두 번 명절 때나 의무방어전으로 떼우신다.

그렇게 끌려가신 아빠는 영화 상영 내내 상모를 돌리고, 엄마는 그런 아빠가 이제는 창피하지도 않은 것 같더라.


그나마 요즘에는 극장 동행이 뜸하시기에 지난주에 살살 군불을 지폈다.

"연휴도 긴데, 두 분이 영화 보러 안 가세요?"

"그러게. 오랜만에 영화 보러 갑시다~"

(아빠는 자체 음소거)

그래, 서프라이즈로 영화 예매를 해드리자!

어떤 영화가 좋으려나~?


엄마는 <쎄시봉>을 원하셨지만, 아빠는 <국제시장>에 그나마 관심을 보이시더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쎄시봉>은 나중에 나 혼자라도 보고 오지뭐~"

그렇게 두 분은 서로서로 절충하여 '극장 구경'을 다녀오셨다.

취향, 가치관, 소통법 등 많은 것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오랜 세월을 함께 산다는 것.

포기와 인정, 배려와 희생 그 사이 어디엔가 두 사람이 서 있기에 가능한 것일까?

한때는 엄청나게 투쟁을 했을 그들일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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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이 등장하는 장면은 많지 않은데, 우리나라 포스터에는 떡하니 투톱으로 등장한다.)



중국 중화TV에서 2011년에 방영한 드라마 <공자孔子>.

공자의 일대기를 비교적 충실하고 차분하게 그렸고 <논어論語>의 구절들을 군데군데 인용한 터라, <논어>를 읽으며 더불어 이 드라마를 보면 공부에 도움이 된다.

주윤발이 공자로 등장하는 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는 사실성보다 극적인 재미를 더 추구하지만, 이 역시 함께 보면 공자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좋은 듯하다.

드라마 <공자>에서는 환경에 순응적인 학자로서의 공자를 만난다면, 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에서는 전략적인 현실 정치가로서의 공자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총 35편에 달하는 드라마 <공자>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을 꼽는다면 협곡회맹[夾會盟]이다.

공자가 노나라에서 대사구大司寇(현재의 법무부장관)로 있던 기원전 500년(52세 때)에, 제나라가 노나라와의 국경에 위치한 협곡에서 동맹을 맺자고 제안을 해온다.

군사력이 우위에 있는 제나라의 제안이기에 노나라 왕은 끙끙대다 결국 협곡으로 가게 된다.

그 자리에서 제나라 왕은 노나라 왕을 무력으로 협박하나 공자가 덕으로 대응하여, 과거에 제나라가 빼앗아간 노나라 땅을 찾아오는 큰 외교적 성과를 거둔다.

회맹의 자리에서 공자가 <시경詩經>의 '모과[木瓜]'라는 노래를 백성들에게 부르게 하여, 제나라 왕을 부끄럽게 만든 것이 주효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드라마의 내용이다.)



投我以木瓜, (그녀가) 나에게 모과를 던져 주기에,

報之以瓊琚. 나는 아름다운 옥 노리개를 드렸습니다.

匪報也, 그것은 보답이 아니라,

永以爲好也. 오랫동안 좋은 사이가 되고 싶어서이지요.


投我以木桃, 나에게 복숭아를 던져 주기에,

報之以瓊瑤. 나는 아름다운 옥을 드렸습니다.

匪報也, 그것은 보답이 아니라,

永以爲好也. 오랫동안 좋은 사이가 되고 싶어서이지요.


投我以木李, 나에게 오얏을 던져 주기에,

報之以瓊玖. 나는 아름다운 패옥*을 드렸습니다.

匪報也, 그것은 보답이 아니라,

永以爲好也. 오랫동안 좋은 사이가 되고 싶어서이지요.



옛날 중국에서는 여성이 마음에 드는 남성에게 과일을 던졌다고 하는데, 그 풍속이 녹아 있는 시이다.

마치 요즘의 발렌타인데이에 여성이 초콜릿을 선물하면, 남성이 명품백으로 응하는 것과 비슷하려나?

상대가 내게 하찮은 물건을 주어도 나는 더 큰 사랑으로 대하겠다는 대인배의 마음, 드라마에서 공자는 이것을 외교적 수사로 활용한 것이다.

'당신이 나를 공격하려 해도 나는 맞서지 않을 거예요. 우리 잘 지냅시다.'

지금 우리네 삶에서도 약자가 강자에게 이렇게 손을 내민다면, '호구'로 전락하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까?

이성 관계에서 더 좋아하는 사람이 덜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손을 내민다면, '어장관리' 당하는 1인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35편을 다 보고 나니, 이제 95편짜리 삼국지 드라마 <신삼국新三國>이 기다리고 있구나 ㅜ.ㅜ )



영친왕비 패옥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 패옥佩玉 : 옛날 중국에서는 남자가 허리띠에 손수건, 칼, 부싯돌, 필통, 옥 등을 달고 다녔는데, 이 옥을 패옥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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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에 위치한 정약용 선생의 생가 <여유당與猶堂>. 선생은 서른 아홉 되던 1800년에 원자인 정조가 승하하시자, 고향으로 돌아와 여유당의 편액을 걸게 된다. 그의 문집인 <여유당기與猶堂記>에서, 당호인 여유당에 담긴 선생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출처 : 경향신문 자료사진)


"-전략- 나(정약용)의 병은 내가 잘 안다. 나는 용감하지만 지모(智謀)가 없고 선(善)을 좋아하지만 가릴 줄을 모르며, 맘 내키는 대로 즉시 행하여 의심할 줄을 모르고 두려워할 줄을 모른다. 그만둘 수도 있는 일이지만 마음에 기쁘게 느껴지기만 하면 그만두지 못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마음에 꺼림직하여 불쾌하게 되면 그만둘 수 없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세속 밖에 멋대로 돌아다니면서도 의심이 없었고, 이미 장성하여서는 과거(科擧) 공부에 빠져 돌아설 줄 몰랐고, 나이 30이 되어서는 지난 일의 과오를 깊이 뉘우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선(善)을 끝없이 좋아하였으나, 비방은 홀로 많이 받고 있다. 아, 이것이 또한 운명이란 말인가. 이것은 나의 본성 때문이니, 내가 또 어찌 감히 운명을 말하겠는가.

내가 노자(老子)의 말을 보건대,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신중하게 하고[與],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 경계하라.[猶]”

고 하였으니, 아, 이 두 마디 말은 내 병을 고치는 약이 아닌가. 대체로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뼈를 에듯 하므로 매우 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건너지 않으며, 사방의 이웃이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자기 몸에 이를까 염려한 때문에 매우 부득이한 경우라도 하지 않는다. -중략- 내가 이 뜻을 얻은 지 6∼7년이 되는데, 이것을 당(堂)에 편액으로 달려고 했다가, 이윽고 생각해 보고는 그만두었다. 초천(苕川)에 돌아와서야 문미(門楣)에 써서 붙이고, 아울러 이름 붙인 까닭을 적어서 어린아이들에게 보인다."

[… 余病余自知之。勇而無謀。樂善而不知擇。任情直行。弗疑弗懼。事可以已。而苟於心有欣動也則不已之。無可欲而苟於心有礙滯不快也則必不得已之。是故方幼眇時。嘗馳騖方外而不疑也。旣壯陷於科擧而不顧也。旣立深陳旣往之悔而不懼也。是故樂善無厭而負謗獨多。嗟呼。其亦命也。有性焉。余又何敢言命哉。余觀老子之言曰與兮若冬涉川。猶兮若畏四鄰。嗟乎。之二語。非所以藥吾病乎。夫冬涉川者。寒螫切骨。非甚不得已。弗爲也。畏四鄰者。候察逼身。雖甚不得已。… 余之得斯義且六七年。欲以顏其堂。旣而思之。且已之。及歸苕川。始爲書貼于楣。竝記其所以名。以示兒輩。]

(출처 : 다산시문집 제13권 여유당기與猶堂記, 韓國古典綜合DB, 한국고전번역원) 


이처럼 정약용 선생은 차가운 세상에 놓인 천둥벌거숭이 같은 자신에게 신중하고 또 신중하자는 의지를 불어넣으며, 집에 여유당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랬건만 그는 이듬해에, 천주교 박해 사건인 신유사옥辛酉邪獄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조심하고 관조하고 성찰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세상이었나보다.


여與(豫)와 유猶 개념의 원조인 노자의 원문이 궁금했다.

<도덕경道德經>을 찾아보니, 노자와 정약용 선생 간에는 의미의 차이가 있어 보인다.



(출처 :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최진석, 소나무)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간 조심조심이 아니라, 내면이 묵직한 가만가만의 이미지가 노자의 말씀에서 연상된다.

노자와 정약용 선생이 제시한 여與(豫)와 유 개념의 상관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道에 이른 사람의 행태인 노자의 여와 유,  이에 가까이 가기 위한 성찰이 정약용 선생의 여와 유가 아니었을까?

내면이 잘 닦인 사람은 납작 엎드려도 비굴하지 않다.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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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학同學들과 논어論語를 공부하고 있다.

그 사이에 주워들은 것이 좀 생긴 덕인지 2012년의 강독 때보다, 무식한 오채원을 비교적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나의 발견은 예상치 못한 보너스.

공자孔子와 제자들 간의 대화, 이에 대한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해석, 그리고 그 밑에 깔린 철학, 한자에 담긴 스토리텔링을 접하노라면, 마치 슴슴한 천연발효 깜빠뉴를 씹는 것 같이, 재미 없으면서 재미지다.

20대에서 60대를 아우르는 동학들의 흥미로운 표정을 둘러보며 '대중강연에서 이 내용들을 풀어놓으면, 우리처럼 좋아들 하지는 않겠지?' 생각하다 갑자기 섬뜩했다.


어쩌면 우리는 현실도피 중인지도 모르겠다.

시끄럽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성현의 정도正道에 대한 말씀을 듣다보면 유토피아에 와 있는 것 같다. 

게임, 도박, 음주처럼 인문학도 순간 우리를 다른 세상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래도 게임, 도박, 음주와는 비교도 못할만큼 건전하지 않냐고?

그들은 양심의 저촉을 받으니, 취해 있다가도 정신이 돌아오면 자신을 반성할 수 있다.

하지만 인문학은 우리 마음 속에서 떳떳하게 작용하여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한다.


우월감을 경계해야겠다.

세상이 인문학 열풍이라고 떠들어대니, 나같은 초학자初學者에게도 세종식 소통리더십을 위시한 인문학 강의의 요청이 늘고 있고, 때때로 강의장에서 강의 쇼퍼shopper들을 만난다.

'적당히 달달하게 가공했지만 그래도 인문학은 인문학이니까. 나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강의장에 앉기는)한 지식인 내지 문화인이다.'

이는 인문학과 공부의 의미를 잃은 태도이다.

고전 맛 좀 보았다고, 명품 걸친 졸부처럼 우쭐대지 말자.


공부에 책임을 져야겠다.

겪어 보니, 리더십을 공부한 사람이 그 리더십에 문제가 많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를진데, 리더십 관련 책을 읽었다고 강의를 들었다고 연구를 한다고, 자신이 리더십을 갖추었다고 믿는 문제아들이 참 많더라.

리더십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은 리더인 척은 안 하니 차라리 낫다.

성현들도 누누이 강조하듯이 공부의 목적은 실행에 있다.

아는 것이 나라고 믿어, 공자와 나를, 세종과 나를 동일선상에 놓는 오만을 경계하자.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이 모든 이야기는 겉멋 든 인문학 초학자인 나의 양심선언 내지는 고해성사이다.
부디 어여삐 여겨주소서~


시문(詩文)을 읽는 공자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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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월 세종사랑방. 세종유통분3>

 

2014년 사자성어 전미개오(轉迷開悟 : 불교 용어. 어지러운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의 깨달음에 이름).

교수신문은 올해 초, 속임과 거짓에서 벗어나, 진실을 깨닫고 새로운 한해를 열어가자는 의미에서 전미개오를 '2014년 희망의 사자성어'로 택한 바 있다.

 

다가오는 2015년은 을미년(乙未年)으로, 양의 해.

양과 관련된 고사성어 양두구육(羊頭狗肉 :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겉은 훌륭해 보이나 속은 그렇지 못한 것 겉과 속이 서로 다름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음).

2014년 우리는 전미개오하지 못하고, ‘청와대 문건’, ‘땅콩회항사건 등 양두구육에 분노하며 2015년을 맞이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에는 진실이 주는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기를 기원하며, 관련된 세종 말씀을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언로를 중시했기에, 신하가 면전에서 자신에게 반박하고, 때때로 불손하게 굴어도 양해했던 세종이지만, 신하의 거짓 보고와 소통 왜곡은 경계하였다.


거가(車駕)가 죽산현(竹山縣) 대민천변(大民川邊)에 머무르니, 경기 관찰사 이선(李宣)이 와서 뵈었다. 임금이 도내의 우량(雨量)과 파종한 상황, 기민(飢民)의 유무를 물으니, ()이 아뢰기를, “전달 20일 사이는 조금 가물었사오나, 22일에는 온 도()에 모두 비가 와서, 비록 흡족하지는 못하더라도 흙을 적시는 데 족하였고, 이달 초2일에는 양지(陽智)와 죽산(竹山) 같은 곳에도 비가 와서 아직은 한기(旱氣)가 없사오나, 파종은 도내 각 고을에서 혹은 10분의 1, 혹은 아직 파종하지 못했습니다. 기민(飢民)은 삼가서 유서(諭書)를 받자와 사람을 보내어 규찰(糾察)하오나, 아직은 기민이 없사옵니다.” (세종 26/5/4) (수령의 거짓 보고)

 

임금이 처음 초수(椒水)에 행행할 때에는 원근의 백성들이 거가(車駕)를 바라보고 길을 메웠더니, 돌아올 때는 한 사람도 와서 보는 자가 없었다. 임금이 승정원에 그 사유를 물으니, 이 앞서 경기 감사 이선(李宣)이 각 고을에 이첩(移牒 알림)하기를, “종량(種糧)이 부족한 인민들이 거가 앞에서 하소연할까 염려되니 현재에 있는 잡곡으로 고루 주게 하고, 그 떠들썩하게 하소연하는 자를 금하게 하라.”(입막음) 한 것이었다. 임금이 보고 승지들에게 이르기를, “이선이 백성들의 관망하는 것을 금하게 한 것은 필시 자기의 허물을 덮어 가리려는 것이겠으나, 내가 일찍이 들으니 나라에서 사람을 보내어 백성들에게 이()되는 것과 해되는 것을 살피게 하려는 것을, 수령들이 미리 효유하여 은휘(隱諱)하게 한 것을 내가 이제야 처음으로 그 실상을 알았다.” (세종 26/5/5) (소통 왜곡 시도가 탄로남)

 

이선을 파직하였다. (세종 26/5/7)

 

세종은 신하들에게만 정직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도 백성에게 진실하고자 하였다.

 

임금이 되어 아랫사람 대접하기를 이같이 공고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세종 29/5/12) (백성을 교묘하게 속여 인기에 영합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 (나이 어린 도적의 처벌 문제를 두고)

 

정직은 윤리성뿐 아니라 성실과도 연결된다.

 

신하된 자가 임금의 명령을 받고서 일을 할 바에는 마땅히 심력을 다해서 도모하여 기필코 성사해 내어야 할 것이니,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그것은 임금을 속이는 것이다.” (세종 26/9/6) (평안도·함길도의 도관찰사와 도절제사에게 송골매 사냥을 독려하며)

신자(臣子)가 군부(君父)의 명령을 받아 할 일이 있으면 마땅히 마음을 다해 도모하고 반드시 성취하기를 기약하여야 할 것이니, 만일 그렇지 않게 되면 이것은 군부를 속이는 것이다.” (세종 27/7/19) (채방 별감(採訪別監)을 함길도·평안도에 보내어 해청(海靑) 사냥을 독려하며)

 

이것이 성의정심(誠意正心 : 대학(大學)8조목. 뜻을 성실히 하고 마음을 바르게 가짐) 아닐까.

세종이 생각하는 재상의 기본 덕목이 바로 성의정심.

 

임금이 좌대언 김종서에게 이르기를, “경이 최윤덕을 아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사람됨이 비록 학문의 실력은 없으나 마음가짐이 정직[操心正直]하고 또한 뚜렷한 잘못이 없으며(청문회에서 문제될 일 없음), 용무(用武)의 재략(才略)은 특이합니다.” 고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곧고 착실하여 거짓이 없으며, 근신(謹愼)하여 직무를 봉행(奉行)[直實無僞, 謹愼奉職]하므로 태종께서도 인재라고 생각하시어 정부(政府)에 시용(試用)하였노라. 그는 비록 수상(首相)이 되더라도 또한 좋을 것이다.” (세종 14/6/9) (가방끈 짧고 언변이 좋지 않지만, 추후 의정부 우의정 제수(세종 15/5/16), 좌의정 제수(세종 17/2/1))

 

공부 많이 하는 것도, 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금의 선비들은 말로는 경학을 한다고 하나, 이치를 궁극히 밝히고 마음을 바르게[窮理正心] 한 인사(人士)가 있다는 것을 아직 듣지 못하였다.” (세종 7/11/29)


나부터 궁리정심, 성의정심하여,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결국 평천하(平天下)되는 2015년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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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이 또 말하였다. “한 그릇의 밥을 두 사람이 같이 먹으면 비록 배는 부르지 않더라도 오히려 한 사람이 혼자만 배부른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一簞之食, 二人共食, 雖不能飽, 猶愈於一人獨飽也。]." (태종 15/1/16)


우리의 옛 어른들은 혼자만 배부른 것을 원치 않았다.

비록 내 입에 들어가는 양이 줄더라도, 함께 나누는 쪽을 택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여민동락(與民同樂)'일 것이다.

넘쳐나는 여유로움을 일시적으로 맛만 보여준 맹자(孟子(맹자 양혜왕 장구 하편(梁惠王 章句 下篇))의 여민동락과 다르다.

우리식의 여민동락 정신은, 함께하여 어려움도 넘기기에, 본류인 맹자를 넘어섰다.


김득신(金得臣), 성하직리(盛夏織履 여름날의 짚신 삼기)종이에 담채, 18세기, 22.4x27cm, 간송미술관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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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우리의 위정자, 오피니언 리더, 경영인들은 왜 이리 개구리 같다냐.

우리를 바보로 여기지 않고서야 그리 처신할 수가 없다.

그들은『장자(莊子)』추수편(秋水篇)에 나오는 '우물 안 개구리[井蛙]'처럼 한 곳에 갇혀 살기에 바다를 논할 수 없나 보다.

그들은 사회가 그들에게 기대하는 바에 역행하는 '청개구리' 같기도 하다.


그들의 스펙을 보면, 학습량이 부족한 탓은 아닐 것 같다.

"눈이 먼 사람은 무늬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고, 귀를 먹은 사람은 종과 북의 소리를 들을 수 없소. 어찌 형체에만 장님과 귀머거리가 있겠소? 앎에서도 또한 그러하니, 바로 그대를 두고 한 말 같소[瞽者無以與乎文章之觀, 聾者無以與好鐘鼓之聲, 豈唯形骸有聾盲哉? 夫知亦有之, 是其言也, 猶時女也.]." (『장자』소요유편(逍遙遊篇))


마음 공부가 안 된 이들에게는 훌륭한 지식도 소용 없다.

아니,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논거로 이용하는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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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세종사랑방에서 강연해주신 안상수 PaTI 날개님도 인용했던 구절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노자(老子)도덕경(道德經)첫 장 첫 줄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로, '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것은 진정한 도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도를 도라고 당연시하지 말라는 노자처럼,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당연함으로 두지 않는 사람, 끊임없이 의심하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철학자'라고 부른다(학자, 기업가, 디자이너 등도 그러하다. 자신의 철학이 없다면 우리는 그를 학자라고, 기업가라고, 디자이너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세종은 의심대마왕이고 철학자이다.

오늘 노자, 장자 전문 철학자인 최진석 교수님(서강대학교 철학과)이 오셔서 세종실록에서 노장 관련 기사를 찾아보았다. 


(세종 7/1/17)

주자소(鑄字所)에서 인쇄한 장자(莊子)를 (세종께서) 문신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세종 14/3/19) 

불교는 유도(儒道)와 더불어 양립(兩立)하여 그 내력이 이미 오래지만, 도가에서 별을 제사하는 것은 더욱 그 옳고 그른 것을 알지 못하겠다. 도가(道家)가 별을 제사하는 사유(事由)를 경(지신사 안숭선)이 옛일을 상고하여 아뢰도록 하라. 내가 장차 대신들에게 의논하려고 한다.”


(세종 7/7/15) 

도교와 불교는 모두 믿을 것이 못된다. 그런데 도사의 말은 더욱 허황하다. 우리나라의 소격전(昭格殿)의 일은 또한 도교이다. 그러나 별[]에게 제사하는 것은 큰일이므로 역대로 전해 와서 지금까지 폐하지 않았다.”

 

이처럼 세종은 의구심은 갖되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구한다.

그는 도교 뿐 아니라 풍수지리, 수학 등 당시 주류 학문이 아닌 분야에서도 의구심을 품고 공부하고자 했다.

 

(세종 12/10/23) 

임금이 계몽산(啓蒙算 계몽산법;수학)을 배우는데, 부제학 정인지(鄭麟趾)가 들어와서 모시고 질문을 기다리고 있으니, 임금이 말하기를, “산수(算數)를 배우는 것이 임금에게는 필요가 없을 듯하나, 이것도 성인이 제정한 것이므로 나는 이것을 알고자 한다.” 하였다.

 

정인지의 도움을 받아 수학 공부를 한 것처럼, 세종은 혼자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소위 '배운 사람' 혹은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독단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세종은 다른 이들과 함께 소통하여 오류를 최소화하고 생각의 폭을 넓혔다

'여민가의(與民可矣백성과 함께하면 된다)'가 바로 세종의 소통 철학의 핵심이다.


(세종 12/12/20) 

경상도 감사가 아뢰기를, “토지를 다시 측량한 뒤 새로 개간한 밭을 알아내기가 매우 곤란하오니, 오래전부터 경작하던 토지의 예에 따라 세를 받아들이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어째서 알아내지 못한단 말이냐. 만일 그것이 의심스럽다면 백성과 같이 하면 될 것이니[與民可矣], 이렇게 하도록 호조에 이르라.”

 

장자(莊子)》에 나오는 제나라 환공과 수레바퀴 깎는 노인의 이야기에서 나온 말'고인지조백(古人之糟魄)'. 

장자는 옛 사람들의 이야기는 술지게미, 즉 찌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더 나아가 최진석 교수님은 '성현의 말씀은 과 같다'고 도발하셨다.

현장에서 내 몸을 부딪혀 살아있는 진실을 구하고, 전문가의 독단을 소통을 통해 해결해야 성현의 말씀이 배설물로 그치지 않고, 거름으로서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이것이 '현대 철학자 세종'에게서의 울림이다(최진석 교수님의 EBS 강의 제목 '현대 철학자 노자'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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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중순에 행복화실 그룹전을 연다.
수업 출석만 열심이고, 그림 연습은 헐렁하였기에 감히 전시회에 참여할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전시가 수업의 마지막 순서라 생각하니 '유종의 미'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그래, 올출석이다.

스케치하다 버리고 오브제를 바꿔 또 스케치하다 내팽개치기를 반복.
명품관에 근무하는 직원이 마치 자기가 명품인 것처럼 착각하기도 하듯, 동료들의 잘 된 그림을 보다 보니 눈이 이마에 올라붙었다.
허접한 내 그림들에 대고 끙끙대기를 며칠.
새로운 오브제를 찾고자 답사 사진들을 둘러보다, 올 봄에 찍은 수원 화성이 눈에 들어왔다.

성의 화려함이 적의 기개를 꺾을 수 있다는 정조의 말씀이 떠올라 끄덕끄덕했던 화성의 자태.
그리고 옛어르신들과 통신하듯 가만히 손을 대보았던 성벽.
감기 탓인지 신나서인지 달아오른 얼굴로 한 번에 그렸다.
완성하고 보니, 못나도 내 새끼다ㅎㅎ

작품명 <화성華城 - 아름다움이 능히 적을 이긴다>.
“한갓 겉모양만 아름답게 꾸미고 견고하게 쌓을 방도를 생각하지 않으면 참으로 옳지 않지만, 겉모양을 아름답게 하는 것도 적을 방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병법(兵法)에 상대방의 기를 먼저 꺾는 것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소하(蕭何)는 미앙궁(未央宮)을 크게 지었고, 또 말하기를 ‘웅장하고 화려하지 않으면 위엄을 보일 수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성루를 웅장하고 화려하게 꾸며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가 꺾이게 하는 것도 성을 지키는 데에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조 17/12/8)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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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방송까지 챙겨 보는 tv프로그램이 있다.
올리브tv에서 매주 목요일 밤에 방영하는 <한식대첩2>.
2인 1조로 팀이 구성되는데, 경북 '종부 자매' 팀(이천 서씨 양경공파 33대 종부), 북한 '전설의 요리사' 팀(무력부 고위 간부의 전속 요리사 출신), 전남 '떡갈비 명인' 팀(담양 '승일식당'&'절라도식당' 주인장), 충북 '백년 고서' 팀(100년 된 조리서 <반찬등속> 속의 음식을 재현하는 음식연구가) 등 전국 열 개 지역의 다양한 이력을 가진 이들이 경연을 펼친다.
여타 음식 경연 프로그램이 승부나 기교에 집중한다면, <한식대첩2>에서는 삶을 보여주어 때때로 속이 찡하다.

오늘, 네 개 팀이 벌이는 준준결승전에서 충북의 '백년 고서' 팀이 탈락했다.
조리학 및 한의학 박사이며 현 대학교 교수인, 40대 후반의 팀 리더가 소회로, 그간 내가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느꼈던 것을 이야기했다.
"세월은 그냥 가는 것이 아니더라."
학문의 배움은 그들보다 적지만, 현장에서의 몸으로의 배움이 긴 전남과 충남 팀에 존경을 보내며 떠났다.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노래 'Old and wise'처럼, 세월과 함께 영글어가는 지혜, 자신감, 여유 등을 나도 갖고 싶다.
"경서를 글귀로만 풀이하는 것은 학문에 도움이 없으니, 반드시 마음의 공부가 있어야만 이에 유익할 것이다.” [句讀經書, 無益於學, 必有心上功夫, 乃有益矣。] (세종 0/10/12)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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