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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원연구소공감]대표 :: 세종이야기꾼 :: 실록연구자 :: 소통 디자이너 :: 010-8014-7726 :: chewonoh@gmail.com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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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다 보면 맥락이 이해되지 않는 '뜬금포'가 종종 등장한다.

그제부터 소화불량에 걸린 부분은 『맹자孟子』「등문공장구 상滕文公章句 上」으로, 성선性善에 대한 맹자의 직접적인 언급이 있어서 자주들 인용하는 구절이다.


滕文公爲世子, 將之楚, 過宋而見孟子. 

등나라 문공이 세자 시절에 초나라로 가려고 송나라를 지나다가 맹자를 만나셨다.

孟子道性善, 言必稱堯舜.

맹자가 인간 본성은 선함을 말하며 말끝마다 요순을 (예로써) 말하셨다.

世子自楚反, 復見孟子. 

세자가 초나라에서 돌아오며 다시 맹자를 만나셨다.

孟子曰, “世子疑吾言乎? 夫道一而已矣.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세자께서는 제 말을 의심하십니까? 무릇 도는 하나일 뿐입니다.

成覵齊景公曰, ‘彼, 丈夫也, 我, 丈夫也, 吾何畏彼哉?’ 

성간이 제나라 경공에게 ‘그도 장부요, 저도 장부인데, 제가 왜 그를 두려워하겠습니까?’ 라고 하였고, [사람의 가능성은 같다]

顔淵曰, ‘舜, 何人也? 予, 何人也? 有爲者亦若是.

안연이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고자 함이 있는 자는 또한 이와 같습니다.’ 라고 하였고, [누구나 분발하면 순임금처럼 될 수 있다]

公明儀曰, ‘文王, 我師也, 周公豈欺我哉? 

공명의가 ‘문왕이 나의 스승인데 주공이 어찌 나를 속이겠는가?’ 라고 하였습니다. ["주공께서 ‘(아버지인) 문왕은 나의 스승이다’라고 하였는데, 주공이 어찌 나를 속이셨겠는가?" 라고 공명의가 말했다.]

今滕, 絶長補短, 將五十里也, 猶可以爲善國. 書曰, ‘若藥不暝眩, 厥疾不瘳.’”

지금 등나라는 이래저래 따지면 사방 50리에 이르니 이만하면 좋은 나라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서경에서 ‘만약 약이 눈을 어둡게 하고, 또 어지럽게 하지 못한다면[명현반응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 병은 낫지 않는다’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궁금한 점은 우선, 公明儀曰, ‘文王, 我師也, 周公豈欺我哉?’ (위의 줄친 구절) 에 대한 나의 해석이 옳은가 하는 것이다.

주희도 이색李穡도 나와 견해가 같은 듯하다.


周公師文王 주공은 문왕을 스승이라 했는데 

豈欺公明儀어찌 공명의를 속였으리요? 

(『목은집牧隱集』에 수록된 시 「고풍古風」중)


저 해석에 의하면, 주공은 자기 아버지인 문왕을 자기의 스승이라고 말한 것이다.

아버지와 스승을 동일하게 본 것이 옳은 해석일까?

자신의 멘토로 아버지나 어머니를 대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 것을 보면, 주공이 자신의 아버지를 스승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주 납득하지 못할 일은 아닐 것 같다.

그런데 저 구절의 맥락은 무엇이란 말이냐? ㅜ.ㅜ

고전을 읽다 보면, 중간 중간 '얜 왜 등장했지?', '그래서 뭘 얘기하려는 거지?' 갑자기 멍해지는 대목이 나온다.

옛분들은 공부에서 소화시킬 구멍을 만들어주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 천천히 드시어요. 체하실까 저어되어 버들잎을 띄웠사옵니다.'


추신. 누구든 맥락 좀 알려주세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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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받는 남자의 비밀~

"(충녕)대군이 평소에 부인(소헌왕후)을 공경히 대하여, 그녀가 드나들 때에는 반드시 일어나서 보내고 맞이하였다[大君平居, 敬待夫人, 其進退, 必起送迎。]." (태종 18/6/3)


가까운 사이일 수록 예의를 잊지 말자.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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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 우리 음악의 조우 '한글, 풍류를 만나다'

한글날 기념음악회 9, 10일 오후 5시 창선당… 2015년 한글 창제 572돌 기념

2015년 한글 창제 572돌을 맞이하여 우리 음악과 다양한 장르가 조우한 이색 음악회가 마련된다.

9일 한글날과 10일 양일간에 걸쳐 서울 동대문역에 위치한 문화예술공간 창선당에서 진행되는 한글날 기념음악회 ‘한글, 풍류를 만나다’는 한글과 우리 음악의 만남으로 한글이 새로운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되는 또 다른 계기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판소리 배일동
한글과 우리 음악, 우리 음악과 한글이 만나면 어떤 예술작품이 탄생하게 될까? 그 출발이 ‘한글, 풍류를 만나다’를 탄생케 했다. 한글 창제 572돌을 맞아 기획된 음악회는 한글 창제 당시의 뜻을 기리고 훈민정음 원형의 노래에서 한글의 원리를 바탕으로 한 창작 판소리, 힙합 장르까지 다양한 장르의 곡을 우리 음악으로 창작, 판소리 형식을 통해 세종과 한글을 기억하게 하고 한글 랩을 통해 한글의 우수성을 대중과 함께 공유토록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소통전문가 오채원
음악회는 1부 훈민정음의 발성과 원리, 판소리의 발성을 연관지어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낸 강연을 시작으로 판소리 한마당이 펼쳐질 ‘훈민정음과 판소리 이야기’, 2부에는 세종 당시에 만들어진 훈민정음 그대로의 노래와 현대 한글이 활용된 한글 랩의 힙합 장르까지,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창작곡들이 가득한 ‘한글, 풍류를 만나다’로 구성된다.

가객 강숙현
특히 2부 공연에서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제자원리를 바탕으로 된 창작 판소리와 고은 시인이 쓴 세종대왕 찬미 시 ‘아, 세종!’에 곡을 붙인 창작곡, 그리고 400년 전 원이 한글로 쓴 사부곡이 소개되고, 노랫말이 아름다운 대중가요 중 가수 이소라가 부른 ‘바람이 분다’, god의 ‘촛불 하나’가 우리 음악으로 연주된다. 

‘한글, 풍류를 만나다’를 장식할 출연진 또한 그 면면이 새롭다.

지난 7월 공연했던 ‘그룹 지리 콘서트’의 주인공,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인 소리꾼 배일동이 훈민정음의 발성원리와 판소리의 발성원리를 접목한 이야기를 판소리 춘향가의 한 대목과 함께 구성지게 들려줄 예정이다.

또한 2부에서는 소통전문가, 소통 디자이너란 이름으로 활동중인 ‘세종이야기꾼’ 오채원의 진행으로 세종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우리 음악을 소개한다.

소리꾼 이신예
소리꾼 백현호
훈민정음으로 만든 최초의 노래인 ‘용비어천가’를 가곡으로 노래할 가객 강숙현이 대금·타악·거문고 연주에 맞추어 노래할 예정이며, 국악실내악 여민 단원인 소리꾼 김빛여울, 가무악패 ‘풍’ 단원 이소나가 400년 전 한글 편지인 사부곡을, 국립극장 차세대 명창으로 선정된 소리꾼 이신예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인 소리꾼 백현호가 창작 판소리 ‘세종과 훈민정음’을 들려줄 예정이다. 

래퍼 아이삭 스쿼브
특히 훈민정음 서문을 바탕으로 창작한 힙합 랩을 선사할 래퍼는 힙합 마니아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래퍼 아이삭 스쿼브가 함께한다. 그는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훈민정음 서문을 그만의 스타일로 창작하여 관객이 함께 따라 부를 수 있는 시간도 마련된다. 이 모든 연주는 국악실내악 여민 팀이 함께한다. 

‘한글과 우리 음악의 조우’만으로도 기대를 더하는 한글날 기념 음악회 ‘한글, 풍류를 만나다’는 9일 보컬 김빛여울, 10일 보컬 이소나, 양일간 오후 5시에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내에 위치한 문화예술공간 창선당에서 공연된다. 전석 3만원. 1544-1555. (02)798-7242
*해당기사 : http://goo.gl/EQxmGV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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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글날은 반포 569돌, 창제 572돌을 맞이한답니다.
이에 훈민정음 창제를 기념하는 멋진 공연을 소개합니다! (참고로, 저도 출연합니다.)

바로 <한글, 풍류를 만나다>! 

공연의 1부에서는 명창 배일동님의 "훈민정음과 판소리" 강연이 준비되어 있는데, 훈민정음 발성의 원리와 판소리가 어우러집니다.

2부에서는 훈민정음을 실험하려 만들었던 용비어천가의 치화평에서부터 훈민정음어제를 랩으로 창작하여 선보이고, 훈민정음 해례본에 실린 제자원리를 바탕으로 한 창작판소리, 아울러 세종대왕을 생각하며 지은 고은 선생님의 '아! 세종'이라는 시에 곡을 붙여 노래하는 등 새롭게 시도되는 창작 무대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한글과 세종을 사랑하시는 분들의 관심과 참석 바랍니다 


2015 한글날 기념 공연 < 한글, 풍류를 만나다 > 


1 일시 : 2015년 10월 9일 / 10월 10일 오후 5시 

2. 장소 : 창선당 (동대문 JW메리어트호텔 지하 1층)

3. 티켓 : 전석 30,000원 
(인터파크 구매 시 1+1 행사 진행중 1544-1555)

4, 출연진: 배일동 (소리꾼/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
강숙현( 가객/ 풍류단시가인 대표)
오채원(사회자/ 소통전문가), 이신예(소리꾼)
백현호(소리꾼/ 토리 리더), 김빛여울( 보컬 )
아이삭(랩퍼) /연주- 국악실내악 여민 與民 

5. 주최/주관 : 문화예술감성단체 여민與民

6. 공연 구성 내용 

사회자 : 오채원 (소통전문가/ 세종이야기꾼) 

1부: 훈민정음과 판소리 이야기 (50분) 
( 강사: 배일동: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
훈민정음 해례본의 발성원리와 연관 지여 판소리 발성의 원리를 
강의와 판소리 공연이 함께 진행 되는 인문학 강의와 판소리 공연이 함께 진행 됩니다 

2부: 한글, 풍류를 만나다 (50분)
연주: 국악실내악 여민 -
가야금, 대금, 해금,피리, 타악1,타악2, 건반 

(1) 천년만세 +축연무
(2) 용비어천가 - 가곡 (가객/ 강숙현 )
훈민정음으로 만든 최초의 노래인 용비어천가를 노래하다 
(3)“편지”- 400년전 원이 엄마가 남편에게 보내는 한글로 된 편지 
(4) 아 세종 (고은 시) 노래 창작곡 - 유태환 작곡 
(5) 훈민정음 서문을 바탕으로 창작한 힙합 랩 (랩퍼: 아이삭) 
(6) 바람이 분다 (이소라 곡 ) - 국악실내악 연주 
2014년 한글날 시인들이 뽑은 ‘아름다운 노랫 말’ 곡 연주 
(7) “세종과 훈민정음” - 창작 판소리 
훈민정음 해례본을 바탕으로 제자원리를 새롭게 창작한
판소리를 들려 준다 (소리꾼 이신예, 백현호 , 자문: 배일동) 
(8) 촛불 하나 (GOD 노래 ) - 판소리 버전 

7. 공연 문의 : 02-798-7242

8. 공연 예매 : http://goo.gl/ZSoQ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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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공연은 정식 초청을 받아 한글날 오전에 세종시에서도 진행됩니다.

* 일시 : 10/9 오전 10:30-11:30

* 장소 : 세종시 호수공원 내 메인무대 (세종도서관 옆)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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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

삶.사람.생각 / 2015. 9. 29. 15:28

'사랑'이라는 말은 '사량量'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사량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생각하여 헤아림'이라고 정의하는데, 본래는 생각의 양이 많다, 많이 생각한다는 정도의 의미였다.

상대에 대한 생각을 자주, 넓게, 깊게 하다 보면, 그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고, 자연 그의 영혼을 보듬어주게 되는 것, 이것이 사랑이리라.


"꽃이 없어 꽃을 그려서 드립니다. 클림트의 영원한 베아트리체 에밀레 플뢰게에게, 구스타프 클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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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에 이어, 가을에도 여주 영릉에 '세종이야기꾼 오채원'이 출동합니다.

바로, <세종, 백성과 함께 음악을 즐기다> 공연이 그 무대인데요.

세종이 누워계신 영릉의 한옥에서, 제가 들려드리는 세종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국악을 접할 수 있는 멋진 시간입니다.

아참! 총 6회의 공연 중, 저는 9/12에 만나실 수 있답니다.

공연에 대한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많이 많이들 놀러오셔요~


* 제목 : 2015 생생문화재 세종의 ‘생생지락 生生之樂’ <세종, 백성과 함께 음악을 즐기다> 

* 일시 : 9-10월 매주 토요일 (9/5, 9/12, 9/19, 10/10, 10/17, 10/24오전 11시

* 장소 : 여주 영릉 (세종대왕릉)

*참가신청 :
http://ehuh9.godohosting.com/entry/entry01/


(지난 봄의 모습)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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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람

삶.사람.생각 / 2015. 8. 30. 11:19

(세한도歲寒圖, 김정희金正喜, 1884년, 지본묵화紙本墨畵, 23x69.2cm)


이 그림은 "날이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잎이 늦게 지는 것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는 『논어(論語)』 「자한(子罕)」편의 글귀에서 유래한다.

완당(혹은 추사)이 59세의 나이로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때에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주었는데, 세상 인심에 동요하지 않고 스승에게 의리를 다하는 모습에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다.

죄인의 신분으로 추락하여 온세상이 등진 스승에게, 이상적은 통역관으로서 중국에 다녀 올 때마다 귀한 책을 구해다 주었다. 

공자 그리고 완당이 느꼈듯이 진정한 '내 사람'은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야 비로소 알아볼 수 있다.

바람 불고 눈비가 와도 늘 변함 없이 그 자리에 있어주는 '내 사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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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삶.사람.생각 / 2015. 8. 29. 14:48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窮則變,變則通,通則久。]." (『주역(周易)』 「계사 하(繫辭 下)」)

VS

"더 많이 변할수록 더 똑같은 것이다[ Plus ça change, plus c'est la même chose]." (프랑스 속담)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조한욱, 책세상문고, 2000, 51쪽.)

간판 바꾸기만 반복하는 우리나라 정당들처럼, '근본적인 변화' 없는 변화는 신뢰를 받을 수 없기에 오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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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에게 책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책을 좌우로 펼쳐놓고 수라을 드시고, 아들의 건강을 염려한 아버지가 책을 숨겨놔도 찾아서 읽었는데.
왜 그리 책에 집착했을까?

처음에는 알아가는 재미, 아는 체하는 맛으로 책을 읽었을 수도 있다.
아버지와 신하들 앞에서 싯구 잇기하며 지식을 뽐내고, 겉모습에 신경 쓰지 말고 마음 공부하라고 형한테 충고하고.

무엇이든 대충 알 때, 자기가 안다고 생각할 때가 위험한 법이다.
몇 번 리더십 교육 받은 리더가 제일 문제인 것처럼.

책을 통한 성찰.
책은 기억의 축적체이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나와 소통하여 내게 영향을 미치기에, 세종은 과거의 역사, 철학 책들과의 소통으로 현재의 자신을 끊임 없이 반성해갔을 것이다.

공부한 사람의 덕은 겸손에 있다.


(세종 13/2/5)
우사간(右司諫) 김고(金顧) 등이 상소하기를,
“세자(儲副)를 교육(輔養)하는 방법은 학문을 닦는 데 있고, 학문이 진익(進益)해 가는 공효는 수시로 반성 점검[敏, 공손히 - 敬과 비슷. ≪논어≫에는 “경으로 자신을 닦는다.”)하는 것을 귀히 합니다. 잠깐이라도 근신 면려하지 않으면  나태하고 경홀한 생각이 싹트기 때문입니다. 
養儲副之方, 在於學問, 進學之功, 貴於時, 頃刻不謹, 則怠忽之念, 或萌矣。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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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을 있게 한 사람, 그러나 실록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사람, 바로 사관.

우리 역사에서 사관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이 보이기 시작한 때는 고려. <고려사高麗史> 백관지百官志 춘추관조에 국초(광종光宗 연간으로 추정)에 국사를 관장하는 기관으로 사관(史館)을 설치했다는 기록.

사관은 젊은 엘리트로, 역사의 기록 및 정자료 보관실록 편찬 등 국사에 관련된 모든 일 담당.

사관에게 성역은 없었다. 이에 따라, 보려는 자(사관)와 보여주지 않으려는 자(권력자) 사이의 투쟁이 이어진다. 


편전에까지 사관이 입시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다

편전(便殿 임금의 집무실)에서 정사(政事)를 들었다사관(史官민인생(閔麟生)이 들어오려고 하므로, -중략- 임금이 말하기를, “편전에는 들어오지 말라.” 하니인생이 말하기를, “비록 편전이라 하더라도, 대신이 일을 아뢰는 것과 경연(經筵)에서 강론하는 것을 신 등이 만일 들어오지 못한다면 어떻게 갖추어 기록하겠습니까?” 하였다. 임금이 웃으며 말하기를, “이곳은 내가 편안히 쉬는 곳이니, 들어오지 않는 것이 가하다.” 하고,  인생에게 말하기를, “사필(史筆)은 곧게 써야 한다. 비록 대궐[殿] 밖에 있더라도 어찌 내 말을 듣지 못하겠는가?” 하니인생이 대답하였다. “신이 만일 곧게 쓰지 않는다면 위에 하늘이 있습니다[臣如不直, 上有皇天。].” (태종 1/4/29)


심지어 임금의 '기록하지 말라'는 말까지 기록했다.


임금이 사냥하다가 말에서 떨어졌으나 사관에게 알리지 못하게 하다

(태종이) 친히 활과 화살을 가지고 말을 달려 노루를 쏘다가 말이 거꾸러짐으로 인하여 말에서 떨어졌으나 상하지는 않았다.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사관(史官)이 알게 하지 말라.” (태종 4/2/8)


세종대부터 사관의 입시가 보다 자유로워짐.


매일 조계에 사관 두 사람이 입시하여 출납하는 모든 일을 기록하라고 명하다

금후로는 매일 조계(朝啓) 사관(史官) 두 사람이 종이와 붓을 가지고 입시하여 일을 기록하고 대언과 함께 물러가며, 조계한 뒤에는 한 사람이 전례에 의해서 일을 기록하라.” 하였다. 처음에 영춘추관사(領春秋館事) 이원(李原등이 글을 올리기를, “삼가 생각하건대 옛 적에 좌우사(左右史)를 두어 말과 일을 기록하였고, 또 지금 명나라에서는 어전(御殿)에서 정사를 볼 적에 태사(太史)로 하여금 붓을 잡고 좌우에 갈라서서 보고 듣는 대로 기록하는데, 우리 조정에서는 국초로부터 사관 한 사람을 입시하게 하였으나, 한 사람이 보고 들은 바를 곧 갖추 기록하지 못하여 물러 나와서 다시 기록하므로, 빠지고 잊음이 없지 않으니, 그 후세에 전할 일에 실로 적당하지 못합니다. 옛 법과 현시의 제도에 의하여 사관 두 사람으로 하여금 붓을 잡고 좌우에 입시하게 하고, 여섯 대언이 나가기를 기다려서 물러가게 하며, 승정원 곁에 가까운 집 한 간을 주어서 사관을 거처하게 하여, 무릇 장계나 하교한 일을 모름지기 사관의 기록을 거친 뒤에 육조와 대간에 내리는 것을 정식으로 삼기를 원합니다.” (세종 7/11/3)


이와 같이 점차 성역이 깨져, 사관은 임금이 머무는 전(殿) 안으로 들어가고, 윤대(국왕과 신하의 독대), 인사 문제를 논하는 자리, 고변자 문초 시, 국가 비밀사 국청할 때에도 배석하게 됨. 이에 따라 왕권 뿐 아니라 신권도 견제.


김종서를 대신할 사람으로 부승지 이세형이 천거되다

좌승지(左承旨) 성염조(成念祖)를 명하여 의정부와 영의정 황희(黃喜)의 집에 가서 의논하여함길도 도절제사 김종서를 대신할 만한 사람을 비밀히 의논하였는데 (세종 22/6/19)


황희·하연·김종서·황보인 등과 변경에서의 야인 수색을 의논하다

임금이 군사를 보내서 파저강(婆猪江) 야인(野人)이 우리 국경을 가만히 엿보는 자를 수색하려고 사인(舍人) 노숙동(盧叔仝)을 불러 비밀히 정부(政府)에 의논하니 (세종 28/5/16)

 

그러나 세종 때에도 사관과의 숨바꼭질은 계속된다.


황희·하연·김종서·정분과 함께 의논하면서 사관에게 피해가라고 하였다

영의정 황희·우의정 하연·우찬성 김종서·우참찬 정분을 불러 비밀리 일을 의논하는데, 중사(中使)가 말하기를, “사관(史官)은 피해 가시요.” 하였다. 사관(史官정신석(鄭臣碩)이 중사(中使)를 통하여 아뢰기를, “()은 직책이 사실 기록함을 맡았으니 듣지 않을 수 없사온데, 만약 다른 사람에게 준례(準例)하여 신을 듣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한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만약 피하라고 말한다면 피하는 것도 또한 마땅하다.” 고 하였다. (세종 28/8/30)


할머니(인수대비)를 살해하는 등 세상 거칠 것 없던 연산군도 역사에 남는 것은 두려워했다.


사관에게 시정만 기록하고 임금의 일은 기록하지 못하게 하다

“임금이 두려워 하는 것은 사서(史書) 뿐이다[人君所畏者 史而已]." (연산군 12/8/14)


이와 같이, 사관의 입시를 통해 공개정치를 보장했기에 조선왕조는 밀실정치로 인한 권력의 부패 방지가 어느 정도 가능했고, 500년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다.

이에 반해 현재의 위정자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오류 투성이에 편향적 시각의 역사 교과서, 자신들의 기록을 폐기하는 정권.

우리 역사 말살과 왜곡은 일본과 중국만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른 역사를 후세에 전하기[傳信於後] 위해서는 우리가 사관이 되어야 한다.


* 참고자료 : <조선왕조실록 어떤 책인가 (이성무)>, <조선왕조실록>


(사진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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