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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원연구소공감]대표 :: 세종이야기꾼 :: 실록연구자 :: 소통 디자이너 :: 010-8014-7726 :: chewonoh@gmail.com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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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18에 강의한 세종 12년에 대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세종은 이 해에 세제개혁을 시도하여, 공법貢法이라는 새로운 전세田稅 제도를 도입하려 합니다.


기존에는 손실답험법(답험손실법)이라고 하여, 그해 농사의 정도를 답험관이 육안으로 조사하여 세금을 매기는 제도를 운용하였는데요.

답험관에 따라 세금이 들쑥날쑥한 폐단이 지적되어 왔습니다. 


이에 세종은 정액 세제인 공법으로 전환하려 하는데요.

즉시 공법을 도입하지 않고, 전국에 담당자를 보내 가가호호 방문 조사하도록 명합니다.

국내 최초의 여론조사로 기록된 사건이 이때 발생합니다.

 

"정부·육조와, 각 관사와 서울 안의 전직 각 품관과, 각도의 감사·수령 및 품관으로부터 여염의 가난한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부可否를 물어서 아뢰게 하라." 

(세종실록 12년 3월 5일)


여기에서 가장 혁신적인 것은 대상의 설정입니다.

대상을 사대부나 관직을 가진 자만이 아니라 일반 백성에게까지 넓히는, 어찌보면 현대 민주주의의에 가까운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5개월 후에 각 지방에서 조사 결과가 취합되어 보고가 올라옵니다.

전국 약 17만 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찬성 95636, 반대 73451명 즉, 약 10:7의 비율로 공법 도입에 대한 찬성이 우세하였습니다


세종의 이 다음 행보가 또 흥미롭습니다.

공법 도입에 반대황희黃喜 등의 의논에 따르라고 명하였다는 점입니다(세종 12/8/10).

이에 따라, 공법을 도입하기보다 답험관의 선발, 평가, 관리의 방책을 보완하게 됩니다. (추후에 공법 도입을 재시도하기는 합니다.)


이처럼 세종은 의견수렴 과정에서 미리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포착하며, 의사결정의 과정 속에서 배제된 의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래서 제가 세종의 소통에 주목할 수밖에 없답니다.   


실록공감_공유_세종_12년_오채원연구소공감.pdf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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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금요일 오후에 예감터여민의 개관 행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예술과 감성의 놀이터'를 표방하는 만큼, 개관일부터 예술과 감성 그리고 재미를 전해드리고자 준비하고 있는데요.

조선시대 태조와 세종 때 축성한 한양도성 다산성곽길에서 우리의 옛놀이와 옛음악, 그리고 역사를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아, 저는 사회자로서 여러분을 맞이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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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7.9.1. pm 4:00-6:00
*주최 : 문화예술감성단체 여민
*후원 : 서울시 중구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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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11에 강의한 세종실록 11년에 대한 내용입니다. 다음과 같이, 세종 10년에 이어 명나라 사신의 횡포가 극에 달했던 해였습니다.


(명나라 사신) 윤봉이 요구한 물건이 2백여 궤(櫃)나 되었다. 궤짝 1개를 메고 가는데 8인을 사용해야 하는데, 궤짝을 메고 가는 사람들이 태평관(太平館)에서부터 사현(沙峴)에 이르기까지 연달아 이어져 끊어지는 일이 없었다. 사신(使臣)의 물품 요구가 많은 것이 이보다 더 심한 때는 없었다.(세종 11/7/16)


다행히 명나라 황제는 '공식 도장을 찍은 문서에 의거해서만 사신에게 물건을 주라'는 칙서를 보냅니다. 그간 진심으로 외교에 임한 결과였습니다.


임금이 왕세자와 백관을 거느리고 모화관(慕華館)으로 나아가서 칙서를 맞이하였다. -중략- "이제부터 조정에서 보내는 내관(內官)·내사(內史)란 사람들이 왕의 나라에 이르거든, 왕은 다만 예(禮)로 대접할 것이요 물품을 주지는 말라. 조정에서 구하는 물건은 오직 어보(御寶)를 누른 칙서에 의거하여 응당 부쳐 보내고, 만약 짐(朕)의 말이라고 말로 전하면서 구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다 들어주지 말라. 왕의 부자(父子)가 조정을 공경히 섬겨 오랜 세월을 지냈으되, 오래 갈수록 더욱 간독히 함을 짐이 길이 아는 바로서 좌우의 근친자들이 능히 이간할 바 아니니 왕은 염려하지 말라." (세종 11/12/13) 


이렇게 어려운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면서 더불어 미래를 위한 준비도 놓치지 않습니다. 바로『농사직설農事直說』의 찬술입니다.


여러 도(道)의 감사(監司)에게 명하여 주현(州縣)의 늙은 농부들을 방문하게 하여, 농토의 이미 시험한 증험에 따라 갖추어 아뢰게 하시고 -중략- 중복된 것을 버리고 그 절실히 필요한 것만 뽑아서 찬집하여 한 편(編)을 만들고 제목을 《농사직설이라고 하였다. (세종 11/5/16)


급무急務와 선무先務를 파악하고 그에 맞추어 일을 진행해나가는 세종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한 해. 바로 세종 재위 11년이었습니다.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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