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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원연구소공감]대표 :: 세종이야기꾼 :: 실록연구자 :: 소통 디자이너 :: 010-8014-7726 :: chewonoh@gmail.com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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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에 위치한 정약용 선생의 생가 <여유당與猶堂>. 선생은 서른 아홉 되던 1800년에 원자인 정조가 승하하시자, 고향으로 돌아와 여유당의 편액을 걸게 된다. 그의 문집인 <여유당기與猶堂記>에서, 당호인 여유당에 담긴 선생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출처 : 경향신문 자료사진)


"-전략- 나(정약용)의 병은 내가 잘 안다. 나는 용감하지만 지모(智謀)가 없고 선(善)을 좋아하지만 가릴 줄을 모르며, 맘 내키는 대로 즉시 행하여 의심할 줄을 모르고 두려워할 줄을 모른다. 그만둘 수도 있는 일이지만 마음에 기쁘게 느껴지기만 하면 그만두지 못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마음에 꺼림직하여 불쾌하게 되면 그만둘 수 없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세속 밖에 멋대로 돌아다니면서도 의심이 없었고, 이미 장성하여서는 과거(科擧) 공부에 빠져 돌아설 줄 몰랐고, 나이 30이 되어서는 지난 일의 과오를 깊이 뉘우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선(善)을 끝없이 좋아하였으나, 비방은 홀로 많이 받고 있다. 아, 이것이 또한 운명이란 말인가. 이것은 나의 본성 때문이니, 내가 또 어찌 감히 운명을 말하겠는가.

내가 노자(老子)의 말을 보건대,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신중하게 하고[與],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 경계하라.[猶]”

고 하였으니, 아, 이 두 마디 말은 내 병을 고치는 약이 아닌가. 대체로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뼈를 에듯 하므로 매우 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건너지 않으며, 사방의 이웃이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자기 몸에 이를까 염려한 때문에 매우 부득이한 경우라도 하지 않는다. -중략- 내가 이 뜻을 얻은 지 6∼7년이 되는데, 이것을 당(堂)에 편액으로 달려고 했다가, 이윽고 생각해 보고는 그만두었다. 초천(苕川)에 돌아와서야 문미(門楣)에 써서 붙이고, 아울러 이름 붙인 까닭을 적어서 어린아이들에게 보인다."

[… 余病余自知之。勇而無謀。樂善而不知擇。任情直行。弗疑弗懼。事可以已。而苟於心有欣動也則不已之。無可欲而苟於心有礙滯不快也則必不得已之。是故方幼眇時。嘗馳騖方外而不疑也。旣壯陷於科擧而不顧也。旣立深陳旣往之悔而不懼也。是故樂善無厭而負謗獨多。嗟呼。其亦命也。有性焉。余又何敢言命哉。余觀老子之言曰與兮若冬涉川。猶兮若畏四鄰。嗟乎。之二語。非所以藥吾病乎。夫冬涉川者。寒螫切骨。非甚不得已。弗爲也。畏四鄰者。候察逼身。雖甚不得已。… 余之得斯義且六七年。欲以顏其堂。旣而思之。且已之。及歸苕川。始爲書貼于楣。竝記其所以名。以示兒輩。]

(출처 : 다산시문집 제13권 여유당기與猶堂記, 韓國古典綜合DB, 한국고전번역원) 


이처럼 정약용 선생은 차가운 세상에 놓인 천둥벌거숭이 같은 자신에게 신중하고 또 신중하자는 의지를 불어넣으며, 집에 여유당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랬건만 그는 이듬해에, 천주교 박해 사건인 신유사옥辛酉邪獄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조심하고 관조하고 성찰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세상이었나보다.


여與(豫)와 유猶 개념의 원조인 노자의 원문이 궁금했다.

<도덕경道德經>을 찾아보니, 노자와 정약용 선생 간에는 의미의 차이가 있어 보인다.



(출처 :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최진석, 소나무)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간 조심조심이 아니라, 내면이 묵직한 가만가만의 이미지가 노자의 말씀에서 연상된다.

노자와 정약용 선생이 제시한 여與(豫)와 유 개념의 상관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道에 이른 사람의 행태인 노자의 여와 유,  이에 가까이 가기 위한 성찰이 정약용 선생의 여와 유가 아니었을까?

내면이 잘 닦인 사람은 납작 엎드려도 비굴하지 않다.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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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학同學들과 논어論語를 공부하고 있다.

그 사이에 주워들은 것이 좀 생긴 덕인지 2012년의 강독 때보다, 무식한 오채원을 비교적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나의 발견은 예상치 못한 보너스.

공자孔子와 제자들 간의 대화, 이에 대한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해석, 그리고 그 밑에 깔린 철학, 한자에 담긴 스토리텔링을 접하노라면, 마치 슴슴한 천연발효 깜빠뉴를 씹는 것 같이, 재미 없으면서 재미지다.

20대에서 60대를 아우르는 동학들의 흥미로운 표정을 둘러보며 '대중강연에서 이 내용들을 풀어놓으면, 우리처럼 좋아들 하지는 않겠지?' 생각하다 갑자기 섬뜩했다.


어쩌면 우리는 현실도피 중인지도 모르겠다.

시끄럽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성현의 정도正道에 대한 말씀을 듣다보면 유토피아에 와 있는 것 같다. 

게임, 도박, 음주처럼 인문학도 순간 우리를 다른 세상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래도 게임, 도박, 음주와는 비교도 못할만큼 건전하지 않냐고?

그들은 양심의 저촉을 받으니, 취해 있다가도 정신이 돌아오면 자신을 반성할 수 있다.

하지만 인문학은 우리 마음 속에서 떳떳하게 작용하여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한다.


우월감을 경계해야겠다.

세상이 인문학 열풍이라고 떠들어대니, 나같은 초학자初學者에게도 세종식 소통리더십을 위시한 인문학 강의의 요청이 늘고 있고, 때때로 강의장에서 강의 쇼퍼shopper들을 만난다.

'적당히 달달하게 가공했지만 그래도 인문학은 인문학이니까. 나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강의장에 앉기는)한 지식인 내지 문화인이다.'

이는 인문학과 공부의 의미를 잃은 태도이다.

고전 맛 좀 보았다고, 명품 걸친 졸부처럼 우쭐대지 말자.


공부에 책임을 져야겠다.

겪어 보니, 리더십을 공부한 사람이 그 리더십에 문제가 많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를진데, 리더십 관련 책을 읽었다고 강의를 들었다고 연구를 한다고, 자신이 리더십을 갖추었다고 믿는 문제아들이 참 많더라.

리더십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은 리더인 척은 안 하니 차라리 낫다.

성현들도 누누이 강조하듯이 공부의 목적은 실행에 있다.

아는 것이 나라고 믿어, 공자와 나를, 세종과 나를 동일선상에 놓는 오만을 경계하자.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이 모든 이야기는 겉멋 든 인문학 초학자인 나의 양심선언 내지는 고해성사이다.
부디 어여삐 여겨주소서~


시문(詩文)을 읽는 공자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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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월 세종사랑방. 세종유통분3>

 

2014년 사자성어 전미개오(轉迷開悟 : 불교 용어. 어지러운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의 깨달음에 이름).

교수신문은 올해 초, 속임과 거짓에서 벗어나, 진실을 깨닫고 새로운 한해를 열어가자는 의미에서 전미개오를 '2014년 희망의 사자성어'로 택한 바 있다.

 

다가오는 2015년은 을미년(乙未年)으로, 양의 해.

양과 관련된 고사성어 양두구육(羊頭狗肉 :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겉은 훌륭해 보이나 속은 그렇지 못한 것 겉과 속이 서로 다름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음).

2014년 우리는 전미개오하지 못하고, ‘청와대 문건’, ‘땅콩회항사건 등 양두구육에 분노하며 2015년을 맞이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에는 진실이 주는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기를 기원하며, 관련된 세종 말씀을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언로를 중시했기에, 신하가 면전에서 자신에게 반박하고, 때때로 불손하게 굴어도 양해했던 세종이지만, 신하의 거짓 보고와 소통 왜곡은 경계하였다.


거가(車駕)가 죽산현(竹山縣) 대민천변(大民川邊)에 머무르니, 경기 관찰사 이선(李宣)이 와서 뵈었다. 임금이 도내의 우량(雨量)과 파종한 상황, 기민(飢民)의 유무를 물으니, ()이 아뢰기를, “전달 20일 사이는 조금 가물었사오나, 22일에는 온 도()에 모두 비가 와서, 비록 흡족하지는 못하더라도 흙을 적시는 데 족하였고, 이달 초2일에는 양지(陽智)와 죽산(竹山) 같은 곳에도 비가 와서 아직은 한기(旱氣)가 없사오나, 파종은 도내 각 고을에서 혹은 10분의 1, 혹은 아직 파종하지 못했습니다. 기민(飢民)은 삼가서 유서(諭書)를 받자와 사람을 보내어 규찰(糾察)하오나, 아직은 기민이 없사옵니다.” (세종 26/5/4) (수령의 거짓 보고)

 

임금이 처음 초수(椒水)에 행행할 때에는 원근의 백성들이 거가(車駕)를 바라보고 길을 메웠더니, 돌아올 때는 한 사람도 와서 보는 자가 없었다. 임금이 승정원에 그 사유를 물으니, 이 앞서 경기 감사 이선(李宣)이 각 고을에 이첩(移牒 알림)하기를, “종량(種糧)이 부족한 인민들이 거가 앞에서 하소연할까 염려되니 현재에 있는 잡곡으로 고루 주게 하고, 그 떠들썩하게 하소연하는 자를 금하게 하라.”(입막음) 한 것이었다. 임금이 보고 승지들에게 이르기를, “이선이 백성들의 관망하는 것을 금하게 한 것은 필시 자기의 허물을 덮어 가리려는 것이겠으나, 내가 일찍이 들으니 나라에서 사람을 보내어 백성들에게 이()되는 것과 해되는 것을 살피게 하려는 것을, 수령들이 미리 효유하여 은휘(隱諱)하게 한 것을 내가 이제야 처음으로 그 실상을 알았다.” (세종 26/5/5) (소통 왜곡 시도가 탄로남)

 

이선을 파직하였다. (세종 26/5/7)

 

세종은 신하들에게만 정직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도 백성에게 진실하고자 하였다.

 

임금이 되어 아랫사람 대접하기를 이같이 공고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세종 29/5/12) (백성을 교묘하게 속여 인기에 영합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 (나이 어린 도적의 처벌 문제를 두고)

 

정직은 윤리성뿐 아니라 성실과도 연결된다.

 

신하된 자가 임금의 명령을 받고서 일을 할 바에는 마땅히 심력을 다해서 도모하여 기필코 성사해 내어야 할 것이니,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그것은 임금을 속이는 것이다.” (세종 26/9/6) (평안도·함길도의 도관찰사와 도절제사에게 송골매 사냥을 독려하며)

신자(臣子)가 군부(君父)의 명령을 받아 할 일이 있으면 마땅히 마음을 다해 도모하고 반드시 성취하기를 기약하여야 할 것이니, 만일 그렇지 않게 되면 이것은 군부를 속이는 것이다.” (세종 27/7/19) (채방 별감(採訪別監)을 함길도·평안도에 보내어 해청(海靑) 사냥을 독려하며)

 

이것이 성의정심(誠意正心 : 대학(大學)8조목. 뜻을 성실히 하고 마음을 바르게 가짐) 아닐까.

세종이 생각하는 재상의 기본 덕목이 바로 성의정심.

 

임금이 좌대언 김종서에게 이르기를, “경이 최윤덕을 아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사람됨이 비록 학문의 실력은 없으나 마음가짐이 정직[操心正直]하고 또한 뚜렷한 잘못이 없으며(청문회에서 문제될 일 없음), 용무(用武)의 재략(才略)은 특이합니다.” 고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곧고 착실하여 거짓이 없으며, 근신(謹愼)하여 직무를 봉행(奉行)[直實無僞, 謹愼奉職]하므로 태종께서도 인재라고 생각하시어 정부(政府)에 시용(試用)하였노라. 그는 비록 수상(首相)이 되더라도 또한 좋을 것이다.” (세종 14/6/9) (가방끈 짧고 언변이 좋지 않지만, 추후 의정부 우의정 제수(세종 15/5/16), 좌의정 제수(세종 17/2/1))

 

공부 많이 하는 것도, 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금의 선비들은 말로는 경학을 한다고 하나, 이치를 궁극히 밝히고 마음을 바르게[窮理正心] 한 인사(人士)가 있다는 것을 아직 듣지 못하였다.” (세종 7/11/29)


나부터 궁리정심, 성의정심하여,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결국 평천하(平天下)되는 2015년을 기대해보자.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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