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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원연구소공감]대표 :: 세종이야기꾼 :: 실록연구자 :: 소통 디자이너 :: 010-8014-7726 :: chewonoh@gmail.com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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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이 또 말하였다. “한 그릇의 밥을 두 사람이 같이 먹으면 비록 배는 부르지 않더라도 오히려 한 사람이 혼자만 배부른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一簞之食, 二人共食, 雖不能飽, 猶愈於一人獨飽也。]." (태종 15/1/16)


우리의 옛 어른들은 혼자만 배부른 것을 원치 않았다.

비록 내 입에 들어가는 양이 줄더라도, 함께 나누는 쪽을 택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여민동락(與民同樂)'일 것이다.

넘쳐나는 여유로움을 일시적으로 맛만 보여준 맹자(孟子(맹자 양혜왕 장구 하편(梁惠王 章句 下篇))의 여민동락과 다르다.

우리식의 여민동락 정신은, 함께하여 어려움도 넘기기에, 본류인 맹자를 넘어섰다.


김득신(金得臣), 성하직리(盛夏織履 여름날의 짚신 삼기)종이에 담채, 18세기, 22.4x27cm, 간송미술관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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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산에는 임진왜란 때에 왜군을 피해 실록을 숨겨놓았던 암자가 세 곳이 있다.

용굴암, 은적암, 비래암.

관련 스토리를 접하고는 부르르 열정이 끓어올라, 실록 이안(移安) 과정의 연구를 시작했다.

이에 따라 올 1월에, 세 곳 중 하나인 그리고 유일하게 접근로가 공개돼 있는 용굴암 답사를 시도했다.

그.러.나. 낙석의 위험 탓에 눈물을 머금고 통제선 근처에서 바라만 보다 왔다.

 

4개월 후인, 올 5월에 재도전!

감사하게도 좋은 날씨 속에 용굴암 답사에 성공했고, 천우신조로 이안 사적지의 발굴을 담당한 전문가도 만났다.

반년을 별러, 이달에는 그 전문가 분의 안내를 받으며 용굴암 뿐 아니라,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은적암과 비래암까지 답사하기로 되어 있었다.

내일이 바로 그 날!

그.런.데. 오늘 아침에 그 전문가 분께 문자를 받았다.

 

"어제 비가 솔찮이 오고, 오늘 아침에는 눈발이 날렸답니다. 용굴암은 가능하지만 나머지 2곳은 위험. 다 보려면 다음 기회를 봐야할 듯."

 

아아. 연애보다 더 애태우는 이노무 답사.

내 마음을 한 번에 허락해주질 않는 나쁜 남자와 같구나.

언제 또 님을 볼 수 있을꼬 ㅜ.ㅜ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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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양녕대군)가 주상(主上, 태종)을 모시고 식사를 하는데 예(禮)에 맞지 않는 것이 많았다. 주상께서 이를 보고 말하기를,
“내가 젊었을 적에 편안히 놀기만 하고 배우지 아니하여, 거동(擧動)이 절도가 없었다. 지금 백성의 임금이 되어서도 백성들의 바람[民望]에 합하지 못하니, 마음속에 스스로 부끄럽다. 네가 비록 나이는 적으나, 그래도 원자(元子)이다. 언어(言語) 거동(擧動)이 어찌하여 절도가 없느냐? 서연관(書筵官)이 일찍이 가르치지 않더냐?”
하니, 세자가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였다.
(태종 5/10/21, 양녕 만 11세 때)

서연관(書筵官)에게 명하여 세자에게 학문에 힘쓰기를 경계하도록 하였다. 문학(文學) 정안지(鄭安止)·사경(司經) 조말생(趙末生)에게 이르기를,
“이제부터 서연(書筵)에 입직(入直)하는 관원은 세자가 식사하거나 움직이거나 가만 있을 때에도 좌우를 떠나지 말고, 장난을 일체 금하여 오로지 학문에만 힘쓰도록 하라. 세자가 만약 듣지 아니하거든 곧 와서 계달(啓達)하라.”
하고, 또 시관(侍官)을 불러 꾸짖었다.
“요즘 듣건대, 세자가 공부하기를 매우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니, 사실은 너희들의 소치이다. 세자가 만약 다시 공부에 힘쓰지 아니하면, 마땅히 너희들을 죄줄 것이다.”
(태종 6/4/18)

태종은 젊은 시절에 바깥으로만 나돌고, 자신의 수양은 커녕 가정 교육에도 신경 쓰지 않았나보다.

이제 정신 차리고 좋은 아버지 노릇을 하려 하나, 아이는 엄격한 아버지를 무서워하기만 한다.

요즘 말로, 아이의 교육에 필요한 것은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이라고 한다.

아이를 부인, 학교, 과외 선생님에게 맡기고, 자기 스스로를 돈 버는 기계로 전락시킨다.

그러나 가정 교육에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아빠의 보듬어줌이 아닐까?

자신이 경외하는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을 때에 아이의 자존감은 자리잡고, 세상에 맞설 용기가 생긴다.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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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사고지(史庫址)에 가고 싶다!

지난달에 부근까지 갔다가 눈물 흘리고 온 그곳.


작년부터 국내의 모든 사고지 답사를 목표로 오대산, 적상산, 전주, 정족산 사고지에 다녀왔다.

물론, 실록 원본을 이제는 그곳에 보관하지 않지만, 임진왜란 등으로 소실된 건물을 근현대에 들어 복원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역사가 깃든 곳이라 나의 여행 희망지 1순위는 늘 사고지였다.

현재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성주, 마니산, 충주 사고지 그리고 북한에 있어 갈 수 없는 묘향산 사고지를 제외하면, 이제 태백산 사고지 딱 한 곳만 남은 터였다.


국내 모든 사고지 답사라는 그림을 완성하는 역사적인 날, 2014년 9월 13일.

태백산 사고지의 수호 사찰인 각화사(覺華寺)에 도착했는데, 뭔가가 이상했다.

응당 있을 태백산 사고지까지 가는 길이 어디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각화사 안팎에서 두리번 거리다가 마침 지나가시는 스님 한 분께 태백산 사고지 가는 길을 여쭈었다.

종무소에 가서 총무님께 물어보라신다.

거 참 이상하다, 손가락으로 방향만이라도 가리켜줄 수 있는데 왜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라시는 게지?


종무소에 갔더니 50대 후반으로 짐작되는 인상 까칠한 아자씨 한 분이 앉아 계셨다.

태백산 사고지 가는 길을 여쭈었더니 버럭하신다.

"내가 이 말만 7년째 하는 건데. 길 없어요."

"네?"

"거기 가봤자 흔적만 남아 있고, 그나마 풀이랑 나무가 무성해서 찾지도 못해."

"그래도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길 아는 동네 사람을 대동해서, 예초기로 풀 깎아 길을 만들며 가야 하는데, 뱀도 엄청 많고 위험해."

거의 울다시피 징징거리며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나는 갈 수가 없단다. 

근처라도 가볼까 싶어 사고지가 있는 방향을 쳐다보니, 나무가 우거져 컴컴한 게 무섭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을 왜 저렇게 방치해 두었는지 화가 났다.

기사를 검색해보니, 탐방객이 증가해서 정진수행이 힘들어지고, 상수원지가 오염될 염려가 있어 한동안은 각화사에서 사고지 복원을 반대했었나 보다.

몇년이 지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는지, 각화사 총무님은 지자체 예산 부족을 탓하셨다.

어떤 사정이든, 우리의 뿌리를 아직도 바로 세우지 못 하고 있는 것이 아쉽고 또 아쉽다.

내년 초봄에 태백산 사고지 답사를 다시 도전하려 하는데, 뜻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함께 해요~!


(요 분은 태백산 사고지 터를 멀리서나마 보고 오셨나 보다.

http://blog.naver.com/kleejh999/20064667121 )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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