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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원연구소공감]대표 :: 세종이야기꾼 :: 실록연구자 :: 소통 디자이너 :: 010-8014-7726 :: chewonoh@gmail.com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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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악의 자연재해로 기록된 17C 경신대기근(1670술년-1671해년). 이때 인구의 1/10이 사망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다소 못 미칠 지 모르겠지만, 세종대에도 큰 기근이 세 차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세종 재위 26년 되던 해에 찾아온다.


'
나물만 먹은 낯빛'으로 들판을 뒤덮은 백성들.
굶주린 사람들이 흙을 파먹는다는 보고.
구휼의 미비를 임금께 고하여 견책을 받을까봐 길거리에 백성들을 못 나오게 막은 관리.


우연히 하늘의 재앙을 만나더라도 사람의 힘으로 구제할 수 있다(세종 26/7/25), 즉 ‘하늘이 내리는 바는 어찌할 수 없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다 해야 한다는 소신을 평소부터 밝혀왔던 세종.

그는 세법인 공법貢法을 손보고,
민간 구휼 창고인 사창법 社倉法의 도입을 논의하고,
치수를 위한 저수지 건설을 고려하고,
백성들의 일상에 영향이 가장 큰 공무원인 수령들의 정신교육 등을 실시한다.
세종에게는 위기가 (시스템 및 사람을 점검하고 혁신하는) 기회였다.


경신대기근 참고 기사 :

http://www.ddanzi.com/ddanziNews/134074538

http://www.ddanzi.com/ddanziNews/13436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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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채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황금색을 무척 좋아하는 터라, 트럼프타워에 이어 백악관 내부도 황금색으로 도배했다는 보도를 종종 접합니다.

사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황(금)색은 황제의 색입니다.

오행五行에서 중앙[土]에 해당하는 황색은 황제 의복의 색이라, 외교적으로 제후국의 형식을 취했던 조선에서는 임금도 원칙적으로 입을 수 없었답니다.

그후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로 등극하며 황금색 옷을 입게 됐습니다.


임금이 병조 판서 한확(韓確)·예조 판서 김종서(金宗瑞)·우참찬 이숙치(李叔畤)에게 이르기를 "고려 공민왕 때에 참람되게 십이장(十二章)의 옷을 입고, 모든 물건은 다 황색(黃色)을 사용하던 것을 태조께서도 다 개혁하지 못하였다가, 태종조(太宗朝)에 이르러 황색 사용을 금지함이 엄중하고 분명하게 되었음이 전장(典章)에 실려 있다. 오늘에 이르러서도 궁중의 복식(服飾)으로 간혹 황색을 사용한 것이 있으나, 궁중의 일이야 고치기 무엇이 어렵겠는가. 중앙·지방의 모든 남녀(男女)의 누렇게 물들인 의복을 엄금함을 거듭 밝히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여러 사람들이 말하기를 "헌부(憲府)로 하여금 금단(禁斷)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세종 26/#7/23)

-

사헌부에 전지하기를 "누른 빛깔은 참람되게(황제의 예도를 침범하여) 사용할 수 없으므로, 그것을 금단하는 법이 《속전(續典)》에 뚜렷이 실려 있는데도, 지금 양가(良家)의 부녀와 여기(餘妓)·공사 천인(公私賤人)까지, 혹은 노상(路上)이나 연회에서 황색(黃色)으로 물들인 옷을 드러내 놓고 착용(着用)하며, 신부(新婦)가 동뢰(同牢)하는 날과 처음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에게 뵈일 때에도 다황색 옷을 착용하기에 이르렀으니, 지금부터는 엄격하게 금함을 거듭 밝히고 착용하지 못하게 하라." (세종 26/#7/24)


* 관련 기사 :

http://news.joins.com/article/21167350


http://www.edudonga.com/?p=article&at_no=20151203093935805986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74640&cid=59022&categoryId=59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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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채원

돼지고기는 그 누린내 탓에 즐기지 않을 뿐더러, 체질상 맞지 않아 소화도 안 되는, 내게는 슬픈 음식이다.

관련 기사를 실록에서 발견하곤 눈이 번쩍


명 황제가 내관(內官) 구아(狗兒)를 불러 말하기를 ‘조선인(朝鮮人)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니, 광록시(光祿寺황실의 음식 담당)로 하여금 쇠고기와 양고기를 공급토록 하라.’ (태종실록 17년 윤5월 8일)


도승지(비서실장) 조서강(趙瑞康)이 "우리나라 사람이 돼지고기를 즐기지 않사오니" (세종실록 25년 3월 4일)


지금은 회식 자리의 단골 메뉴이건만, 조선시대에는 돼지고기를 잘 먹지 않았나보다. 

대체 언제부터 우리는 돼지고기를 즐기게 됐을꼬?

알쓸신잡 경주 편을 보다가 일부 실마리를 잡았다.


황교익 선생님 왈 "대규모 양돈산업은 일본에 수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거다. 일본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서 돼지를 키워야했다. 그런데 돼지를 키우는 것은 배변물 처리가 문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키우게 한 것이다. 자기네들은 안심, 등심만 가져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삼겹살, 족발, 머릿고기 등만 먹게 된 것" 


* 참고 : 매일경제, [툭-tv]‘알쓸신잡‘, 한국인들이 삼겹살 많이 먹게 된 이유, 2017-07-01

http://star.mk.co.kr/new/view.php?mc=ST&year=2017&no=440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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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