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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원연구소공감]대표 :: 세종이야기꾼 :: 실록연구자 :: 소통 디자이너 :: 010-8014-7726 :: chewonoh@gmail.com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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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4.05 전통시대에도 발렌타인데이가 있었을까?

국가 기념일이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기다리는 날이 있습니다. 발렌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가 여기에 속할 텐데요. 로마의 ‘발렌티노 성인St. Vanentine 축일’을 일본의 한 제과회사가 왜곡시켰다는 지적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초콜릿이나 사탕 등을 이성에게 선물하며, 이 두 날을 사랑 표현의 기회로 삼습니다.

옛 사람들은 어떻게 이성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을까요? 약 삼천년 전의 사람들이 남긴,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 『시경詩經』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投我以木瓜, (그녀가) 나에게 모과를 던져 주기에,

報之以瓊琚. 나는 아름다운 옥 노리개를 드렸습니다.

匪報也, 그것은 보답이 아니라,

永以爲好也. 오랫동안 좋은 사이가 되고 싶어서이지요.

 

投我以木桃, 나에게 복숭아를 던져 주기에,

報之以瓊瑤. 나는 아름다운 옥을 드렸습니다.

匪報也, 그것은 보답이 아니라,

永以爲好也. 오랫동안 좋은 사이가 되고 싶어서이지요.

 

投我以木李, 나에게 오얏(자두)을 던져 주기에,

報之以瓊玖. 나는 아름다운 패옥을 드렸습니다.

匪報也, 그것은 보답이 아니라,

永以爲好也. 오랫동안 좋은 사이가 되고 싶어서이지요.

 

(『시경詩經』 「모과木瓜」)

 

(영친왕비 패옥.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홈페이지 www.gogung.go.kr)

옛날 중국에서는 여성이 마음에 드는 남성에게 과일을 던지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서진西晉 시대의 문인이자 중국 ‘초절정 미남’의 대명사로 꼽히는 반악潘嶽이 나타나면, 온 동네 처녀들이 몰려와서 어찌나 많은 과일을 던졌던지 수레(지금의 자가용)가 가득 찼다고 하는데요. 이 이야기는 ‘반랑(반악)에게 과일을 던지다’라는 ‘척과반랑擲果潘郎’, ‘과일을 던져서 수레가 가득하다’는 ‘척과영거擲果盈車’ 등의 고사성어를 남겼습니다.

 

선물을 받으면 이에 대한 응답이 있어야 되겠지요? 위의 『시경』 구절을 보면, 과일을 받은 남성이 허리에 차고 있던 옥을 여성에게 선사합니다. 옛 사람들은 허리띠에 옥을 달고 다녔는데, 이를 패옥佩玉이라 합니다. 과일을 준 상대에게 옥을 선물하는 행위, 마치 여성이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면, 남성이 화이트데이에 명품백으로 응하는 것과 비슷할까요?

 

『시경』 속 남성은 자신의 행위가 기계적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라, 오랫동안 인연을 다져가기 위한 정표情表라고 말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대하겠다는 대인배의 마음이 엿보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과일을 던졌을까요? 고대로부터 여성을 꽃에, 남성을 벌 혹은 나비에 비유하는데, 그들의 조합으로 열매가 열리지요. 결국 ‘배필이 되어 당신과 사랑의 결실을 맺고 싶어요’ 라는 고백으로 보입니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과일을 던지실 분이 계시다면, 맞아도 안 아픈 과일로 잘 고르셔야겠습니다.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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