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종의 고독력孤獨力 경영 – 세종을 세종으로 만든 힘 (고독력, 셀프리더십) 2. 세종의 오득五得 공감 – 세종리더십의 다섯 가지 열쇳말 (리더십) 3. 세종시대의 행복론 공향共享 - 더불어 살맛나는 세상 만들기 (행복자산) 4. 창의는 위기 속에서 꽃핀다 – 세종의 위기관리 리더십 (위기관리, 창의성) 5. 아름다움이 적을 이긴다 – 리더의 멋과 힘 (시각적 메세지, 리더십) 6. 식솔력食率力 - 왕의 밥상 속에 펼쳐진 리더십 (조선 음식문화, 리더십) 7. 이도李祹 씨네 가족 이야기 – 세종 가족의 소통법 (가족소통)
본 강좌는 기업・대학・기관 등에서 16년간 소통・인문학・세종리더십 등을 강의해왔고, 커뮤니케이션 석사 및 동양철학 박사(수료)이며, 방송・음악회를 통해 대중과 만나온 세종이야기꾼 오채원이 진행합니다.
작년 12월에 중국에서 신종 전염병의 발생이 보고된 이래,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정국’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전염병을 역병疫病, 역질疫疾, 괴질怪疾 등으로 불렀는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무려 1,600건 이상의 관련 기록이 있습니다. 유독 전염병이 크게 돌던 시기는 대체로 전쟁이나 이상 기후로 인해 농사에 실패하여 식량이 부족한 때였습니다. 굶주려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돌게 되는 것이지요.
전통시대에는 역병을 역귀疫鬼라는 귀신이 일으킨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매해 연말에는 아래의 실록 기사처럼, 역귀를 몰아내는 계동대나의季冬大儺儀를 궁궐에서 거행했습니다.
군기감軍器監(군수물자를 제작하는 국가기관)에서 화약을 궁궐의 뜰에 설치해 역신을 쫓아냈는데, 이는 연례 행사였다. 이에 여진족과 일본 사신에게 구경하게 했는데, 불화살이 섞여 발사되자, 모두 놀라고 두려워서 부산하게 달아나다가 옷이 불타버린 자도 있었다. (태종실록 13년 12월 29일)
이는 사전에 전염병을 대비하기 위한 국가적 행사였습니다. 현재의 청와대처럼 조선시대에도 중앙 정부가 전염병 관리의 컨트롤 타워였거든요. 이렇게 역귀를 물리치기 위한 의례를 치렀음에도 전염병이 돌면, 공무원들을 각 지방으로 파견해 제사를 지내서 역신을 달랬습니다.
그래도 역병에 걸리면 역신이 따라오지 못하게 도망을 다니는데 이를 피병避病이라 합니다. 세종 2년(1420년)여름에 학질(말라리아)에 걸린 어머니 원경왕후를 세종이 직접 모시고 궁궐을 나와서 한 달 넘게 거처를 옮겨 다니느라 고생한 기록들이 있습니다. 역신이 모르게 하느라 캄캄한 밤에 이동하다가 엉뚱한 집에 들어가기도 했고요. 심지어는 원경왕후의 남편이자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도 모자의 행선지를 뒤늦게야 알게 되었을 정도입니다.
전통시대라고 하여 이처럼 전염병에 비과학적으로 대응한 것만은 아닙니다. 우선, 민생 안정을 위해, 백성의 군역軍役·부역夫役을 정지하고 공납貢納을 연기, 즉 군복무와 세금납부의 의무를 일시 감면했습니다. 보건위생 차원에서 보자면, 역병으로 사망한 자는 임금이 거주하는 서울 성 밖에 묻거나 화장하고, 환자는 성 밖으로 격리시켰습니다. 지방에 의사를 임시 파견하고, 현재의 질병관리본부에 해당하는 활인서活人署와 국립중앙의료원 격인 혜민서惠民署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굶주린 이들을 보살폈습니다. 이를 구료救療라고 하는데, 국가에서 제정한 표준 매뉴얼에 따라 성실하게 백성을 구료하지 않거나, 현황에 대해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관리는 문책했습니다.
각도의 감사에게 임금의 뜻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민간에 전염병이 발생하거든 구제하여 치료해 주라는 조항을 여러 번 법으로 세웠는데, 각 고을의 수령들이 하교의 취지를 살피지 않는다. 올해는 전염병이 더욱 심하건만 수령들이 구료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니, 일찍이 내린 각년의 조항을 살펴서 백성들을 구료해 살리도록 마음을 쓰라.” (세종실록 14년 4월 21일)
조선이 미개한 국가여서 전염병이 돌면 제사를 지내거나 역신을 쫓는 행사를 치른 것이 아닙니다.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면, 국가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 해야 했음을 드러내는 사건들일 뿐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전염병도 결국 마음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서 가짜 뉴스에 현혹되기보다, 안전보건수칙을 지키며 내 이웃을 돌아보는 과학적이고 또 인간적인 태도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요즘입니다.
(‘결국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따스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는 이동학 님의 자가격리 소회와 관련 사진.
작년 <들리는 사진관 : 영정사진 프로젝트>에 기획자로 참여하며, 영정사진을 찍는 20대들이 제법 있음을 알게 됐다. 그들은 특별한 질병이 있거나, 히키코모리도 아닌, '정상적' 범주의 사람들이다. 최근에 고독사(나눔과나눔의 박진옥 사무국장님 왈 '고립사')한 30대 여성에 대한 뉴스를 접했다. 동거인인 오마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나도 그와 처지가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하니 먹먹하다. 과거에는 고독사라는 것을 주로 궁핍한 노년기와 연결시켰지만, 이제는 고시원 혹은 원룸 등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거나 영위하는 젊은 층의 삶의 한 양상으로 포착하기 시작했다. 관련 자료를 찾다보니, 한국과 일본의 두 시각이 흥미롭다(물론 이들이 각 국의 대표선수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두 칼럼은 큰 틀에서 사회구조적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첫 번째 칼럼의 '고독사는 사회적 방임이며 더 나아가 살인'이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고독사의 예방책으로 '가족 해체를 막자'는 주장은 현재의 사회 변화상으로는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가족의 형태와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두 번째 칼럼에서는 격무에 의한 극심한 스트레스가 ‘자기 방임’을 부르고, 이것이 젊은 층의 고독사로 이어진다고 진단하였다. 연간 노동시간이 OECD 평균인 1759시간보다 265시간이 더 길고(2017년 기준), 이에 따른 과로사가 사회적 문제로 다뤄지는 우리나라에도 시사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복지 차원의 논의를 다루기보다, 개인이 관계망 유지에 힘쓰라는 이 칼럼의 해결책은 문제의 본질을 축소시키는 인상을 준다. 이제 개인에게 '어금니 꽉 깨물고 살라'고 다그치지 말고, 우리 함께 논의해야 할 때이다. 아니, 이미 늦은 감이 있다.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 한양에는 성균관이라는 공립 고등교육기관, 그리고 동서남북 네 곳에 4부학당이라는 공립 중등교육기관이 있었습니다. 지방에서는 향교라는 공립 중등학교가 운영됐습니다. 사학교육기관으로는 서원이 있었고요.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목적으로 운영된 이 간성향교는 세종 2년인 1420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간성읍 상리 쇠롱골(당시 용연동)에 창건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무려 600여 년 전에 지어진 유서 깊은 공간에서 선비의 덕,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관객께 전해드리고, 또 그와 관련된 음악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이렇게 간성향교는 오랜 역사 위에 차츰차츰 새로운 이야기를 채워나가며, 유구한 역사를 이어가겠지요. 그 역사의 한 자락에 참여하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내게 음악회 진행은 참으로 배부른 시간이다. 조명에 몰려든 날벌레를 입으로 코로 오백 마리 흡입해댄 탓만은 아닐 것이다. 무대 옆 대기석, 그 어느 관객보다 가까이에서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시공간을 초월한 그 어딘가로 마냥 빠져든다. 물론 진행이라는 내 본분을 다하려니, 아주 잠시만 선택적으로 정신줄을 놓을 수밖에 없다.
작년부터 진행해온 달빛음악회 <황후의 잔치 - 명성야연>. 이날은 관객들의 박수 인심이 유독 좋아서, 원고를 읽기보다 대화하듯이 만나고 싶었다. 덕분에 실수도 많았다. 예전 같으면, 연출자께 송구해서 집에 오는 내내 차창에 머리를 박았을 것이다. 하지만 소통이란 정확한 정보만으로는 불충분함을 그분도 알아주시리라 믿는 뻔뻔함이 이제는 생겼다. 나이 먹을 수록 피부가 얇아진다는데, 내 마음은 안티에이징이 잘 되는지 점점 두꺼워진다ㅎ
4/25(목) 개강(예정)하여 34주간 이어질 '세종실록 함께 읽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혼자가 아닌, 더불어 읽고 토론하는 실록공감의 시간. 그 안내도를 이달 3/28(목) 시민청(시청역)에서 90분간 소개해드립니다. 강의콘텐츠, 공연콘텐츠, 브랜딩, 리더십, 역사문화해설 등에서 갈급함이 있는 분들께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나도 실록이라는 것을 읽어보고 싶다'는 분들도요.
시민들과 함께 밑줄 그어가며 실록 속의 태조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여타 실록과 달리, 태조실록은 스펙타클한 영웅담이 신화처럼 펼쳐지는 재미가 있습니다. 계비인 신덕왕후와의 사랑, 그리고 애증의 아들인 태종 이방원 등 태조의 드라마틱한 가족이야기에도 수강생들은 몰입해주셨다지요.
그 1년여 후에 동구릉문화제의 일환으로, <스토리텔링 콘서트 태조>에서 이야기꾼으로 섰습니다. 시야도 공기도 시원~한 왕릉에서, 태조이야기+영상+우리음악이 어우러지는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