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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원연구소공감]대표 :: 세종이야기꾼 :: 실록연구자 :: 소통 디자이너 :: 010-8014-7726 :: chewonoh@gmail.com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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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즉위 600주년을 맞아 야심차게 준비한 2018년 1년간의 프로젝트 [세종이야기 풍류방].

지난 1/25(목)에 그 첫 시간을 열었습니다.

체감 기온이 영하 20도인 날에도 많은 분들이 일찍부터 왕림하셔서 관객석 뒤의 계단까지 메워주셨습니다(사진에는 나오지 않습니다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제가 들려드렸던 이야기는 '세종이 즉위 초기의 시련을 어떻게 넘겼을까?' 였습니다.

상왕으로 물러났다고는 하지만, 국방이나 인사 등 주요 의사결정의 권한을 여전히 쥐고 있던 아버지 태종.

그에 의해 이루어졌던 처가 심씨 일가의 정치적 처리.

그때 세종이 취했던 태도.

그 속에 숨어 있던 세종의 의도, 그리고 그것이 이후의 정치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후아. 1시간 반이 너무나 숨가쁘게 지나갔습니다. 




매월 마지막 목요일 저녁에 세종 이야기와 우리 음악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들려드릴 예정인데요.

이달에는 또 어떠한 이야기가 찾아올지 기대해주세요.

(저는 9월과 12월에도 여러분을 찾아뵐 예정입니다.)

참가 신청, 문의 사항 등에 대해서는 아래에 첨부한 주관사 '문화예술감성단체 여민'에 연락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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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실록공감 34주 과정을 마쳤다.
그 수료식은 지난 1/30에 있었는데 이제야 포스팅한다.
마치 어린 시절에 핫도그 먹으며 소세지를 남겨놓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랄까.



당초 세종실록을 읽는 것뿐 아니라, 학습공동체의 경영 또한 '세종 방식'으로 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욕심도 참 많았지;;;
덕분에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확인하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매주매주 할 수 있었다.
보다 정확한 지식을 전하는 일에 집중했는데, 이로 인해 나는 스스로의 장막에 갇혀버렸다.
마지막 날까지 나는 경청하지 않고 내 말에만 집중했다.
사실 이 반성은 매주 했는데, 끝까지 반복했던 점이 미안하다.


"경서(經書)를 깊이 연구하는 것은 실용하기 위한 것이다. 경서와 역사기록을 깊이 연구해 나라 다스리는 도리를 차례로 살펴보면, 그것이 보여 주는 나라 다스리는 일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이 쉽다. 그러나 실제 일에 당면하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경우가 있다. 내가 경서와 사서(史書)를 널리 찾아 읽었으나, 오히려 아직 능(能)하지 못하니, 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세종실록 7년 12월 8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족한 선생을 어여삐 여겨주신 도반들께 감사드린다.
그야말로 서프라이즈!
정성스럽게 머핀을 굽는 등 풍성한 잔치를 준비해주시고, 고심해 고르셨음이 역력히 느껴지는 선물들을 전해주시는데 눈물이 살짝.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진하게 전해주신 도반 여러분 고맙습니다!
사회초년생 때 '몽블랑
은 성공의 상징'이라 듣고, 내가 구입할 생각만 했지, 이처럼 선물로 받고 보니 '성공'에 대한 깨우침이 크게 다가옵니다.
가르침 주셔서 고맙습니다!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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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즉위 600주년 기념 시리즈 강연.
매달 1회, 1년 12회, 세종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우리 음악이 어우러질 예정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몇 곳에 보도가 되었습니다.


http://www.newsfreezo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36378

(출처 : 뉴스프리존)



이번주 목요일 저녁이 그 장도의 첫날로, 주제는 {충녕, 세종이 되다}.

제가 12회 강연의 첫번째 주자로 뛰게 되었습니다.

충녕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자가 어떠한 과정을 거치며, 임금이 되는가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1년 농사의 시작을 맡은만큼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돠!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8012401032709043001

(출처 : 문화일보)



*강의 : 오채원, 김영옥, 김기섭, 배일동, 조성환, 김슬옹 등 초호화캐스팅
*일시 : 매달 마지막 목요일 저녁 7-10시
*장소 : 다산성곽길 예감터여민
*주최 : 문화예술감성단체 여민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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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올해는 세종이 즉위한 지 10주갑, 즉 6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회갑回甲·환갑換甲 등으로도 불리는 주갑周甲은 동아시아문화권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60갑자를 다 지내고 다시 시작인 갑甲으로 되돌아오는 때이거든요.

하나의 큰 마무리이자 또 시작점이 되기에, 우리는 61세 생일을 중요하게 지내왔습니다.



'겨레의 스승'으로 불리는 세종이 왕위에 오른지 60주갑, 즉 600주년이 되는 올해를 어떻게 기념하면 좋을지 생각이 많았습니다.

세종 연구자만이 아니라, 가벼운 관심이 있는 분들도 함께 어울렁더우렁 즐길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어떻게 세종을 만나게 됐는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는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세종실록을 함께 읽은 도반들이 중심이 되어, 세종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시각에서 나누는 시간을 마련하였습니다.




매달 마지막 목요일 저녁 7시, 12개의 테마 강연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한의학, 동양철학, 자연과학, 훈민정음학,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해한 세종, 그리고 각 테마에 어울리는 악기에 대한 이야기 및 연주를 들려드립니다.

그 시작은 제가 맡았습니다.

<충녕 이도李祹, 세종이 되다>

세종이 어떠한 사람이었기에 왕이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친 아버지 태종에 대한 이야기 등을 준비하였습니다. 

선착순 10분에 한하여 무료 수강의 기회를 제공하니 서둘러주세요!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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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릉에서의 실록강독] 4주 과정이 끝났다.

동구릉 내 건원릉의 주인인 태조의 이야기를 태조실록, 태종실록, 세종실록, 연려실기술, 선원계보기략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 읽어보았던 시간.
아울러 세종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어 유익했다.
완죤 사심 충족의 시간ㅎ

빡빡한 일정 속에서 교재까지 제작하느라 울고 싶은 때도 있었지만, 나 스스로가 재밌어서 몰입한 시간이 더 길었다.
수강생들이 대체로 실록을 처음 접한 분들이라, 역사적 배경, 용어, 관직 등에 대한 설명을 요즘 개념으로 풀어드리고자 애썼다.
또한 큰 틀을 이해시키며 실록도 구절구절 읽어내야 하는데, 4주라는 길지 않은 시간이 주어진 터라, 내용 구성에서도 고민을 좀 많이 했다.

책걸이 떡을 먹으며 소감을 나누는데, 나만 아쉬운 것은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에 감사했다.
그리고 이 과정의 시작과 끝을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내년에는 수강생 자신의 이야기를 발굴할 수 있는 시간을 보다 더 많이 만들어가고 싶다.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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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황금색을 무척 좋아하는 터라, 트럼프타워에 이어 백악관 내부도 황금색으로 도배했다는 보도를 종종 접합니다.

사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황(금)색은 황제의 색입니다.

오행五行에서 중앙[土]에 해당하는 황색은 황제 의복의 색이라, 외교적으로 제후국의 형식을 취했던 조선에서는 임금도 원칙적으로 입을 수 없었답니다.

그후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로 등극하며 황금색 옷을 입게 됐습니다.


임금이 병조 판서 한확(韓確)·예조 판서 김종서(金宗瑞)·우참찬 이숙치(李叔畤)에게 이르기를 "고려 공민왕 때에 참람되게 십이장(十二章)의 옷을 입고, 모든 물건은 다 황색(黃色)을 사용하던 것을 태조께서도 다 개혁하지 못하였다가, 태종조(太宗朝)에 이르러 황색 사용을 금지함이 엄중하고 분명하게 되었음이 전장(典章)에 실려 있다. 오늘에 이르러서도 궁중의 복식(服飾)으로 간혹 황색을 사용한 것이 있으나, 궁중의 일이야 고치기 무엇이 어렵겠는가. 중앙·지방의 모든 남녀(男女)의 누렇게 물들인 의복을 엄금함을 거듭 밝히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여러 사람들이 말하기를 "헌부(憲府)로 하여금 금단(禁斷)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세종 26/#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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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헌부에 전지하기를 "누른 빛깔은 참람되게(황제의 예도를 침범하여) 사용할 수 없으므로, 그것을 금단하는 법이 《속전(續典)》에 뚜렷이 실려 있는데도, 지금 양가(良家)의 부녀와 여기(餘妓)·공사 천인(公私賤人)까지, 혹은 노상(路上)이나 연회에서 황색(黃色)으로 물들인 옷을 드러내 놓고 착용(着用)하며, 신부(新婦)가 동뢰(同牢)하는 날과 처음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에게 뵈일 때에도 다황색 옷을 착용하기에 이르렀으니, 지금부터는 엄격하게 금함을 거듭 밝히고 착용하지 못하게 하라." (세종 26/#7/24)


* 관련 기사 :

http://news.joins.com/article/21167350


http://www.edudonga.com/?p=article&at_no=20151203093935805986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74640&cid=59022&categoryId=59022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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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는 그 누린내 탓에 즐기지 않을 뿐더러, 체질상 맞지 않아 소화도 안 되는, 내게는 슬픈 음식이다.

관련 기사를 실록에서 발견하곤 눈이 번쩍


명 황제가 내관(內官) 구아(狗兒)를 불러 말하기를 ‘조선인(朝鮮人)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니, 광록시(光祿寺황실의 음식 담당)로 하여금 쇠고기와 양고기를 공급토록 하라.’ (태종실록 17년 윤5월 8일)


도승지(비서실장) 조서강(趙瑞康)이 "우리나라 사람이 돼지고기를 즐기지 않사오니" (세종실록 25년 3월 4일)


지금은 회식 자리의 단골 메뉴이건만, 조선시대에는 돼지고기를 잘 먹지 않았나보다. 

대체 언제부터 우리는 돼지고기를 즐기게 됐을꼬?

알쓸신잡 경주 편을 보다가 일부 실마리를 잡았다.


황교익 선생님 왈 "대규모 양돈산업은 일본에 수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거다. 일본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서 돼지를 키워야했다. 그런데 돼지를 키우는 것은 배변물 처리가 문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키우게 한 것이다. 자기네들은 안심, 등심만 가져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삼겹살, 족발, 머릿고기 등만 먹게 된 것" 


* 참고 : 매일경제, [툭-tv]‘알쓸신잡‘, 한국인들이 삼겹살 많이 먹게 된 이유, 2017-07-01

http://star.mk.co.kr/new/view.php?mc=ST&year=2017&no=440692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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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릉에서의 실록강독} (구리시 주최, 문화예술감성단체여민 주관)목요반 두 번째 시간.

아침부터 건원릉에 인사 드린 덕분인지, 태조의 호랑이 기운이 뻗쳤다ㅎ


오늘은 태조실록을 총서 중심으로 읽어나갔다.

황산대첩, 요동정벌, 위화도회군 등을 거치며, 고려의 한 지방의 '군인 이성계'에서 국민적 '영웅 이성계' 그리고 조선의 '임금 이단李旦'으로 전환해가는 장면들.


그 속에서 덕업을 널리 보이며 민심을 획득해나가는 태조의 모습이 펼쳐졌다.
태조실록은 여타 실록과 성격 및 스케일이 다르다.
마치 오디세이, 영화 <300>, 반지의 제왕 등의 스펙터클 서사시와 같다(완죤 남자다잉~).


강독을 마친 후 사무실로 향하다 따끈한 차가 고파졌다.
방앗간에 들러 몸을 녹이며 하루를 반추해본다.
감사한 만남이 이어졌던 오늘.
책에 줄 그으면서 함께 읽어나가는 느낌이 좋다는 수강생 분들의 피드백을 떠올리며, '공부의 맛'에 대해 생각해본다.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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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2017.4.26)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던 내용.

최근 신고리 5, 6호기 공사재개와 관련된 공론화 과정을 보며, 대통령의 소통관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에 여기에 다시 포스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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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TV토론에서, 다섯 명 중 두 명이 '닮고 싶은 지도자'로 세종을 꼽았다.

세종을 언급해서가 아니라, 언급한 이유에서 많은 차이가 보여 흥미로웠다.

한 사람은, 장영실의 등용을 닮고 싶은 이유로 들었는데, 스티브 잡스의 조선 버젼 같다.

그리고 소통리더십을 이야기했지만, 효과 검증의 채널로 백성을 설정하였다.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 않아서 하나만 집중해야 했을 텐데, 이 두 이유를 모두 포기할 수 없었나보다.


이에 비해, 다른 한 사람은 한 가지에 집중했다.

공법貢法이라는 세제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여론 수렴을 말했다.

한 사람은 결과, 또 한 사람은 과정을 거론했다.

동일한 인물을 두고 논했지만 이렇게 다르다.


* 해당 영상 :

http://tv.naver.com/v/1633063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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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에 세종 재위 21년의 기사를 함께 읽었다.
안개 속에서 즉위하고 인턴십을 거쳤던 이도李 씨는 10여 년간 줄줄이 성과를 내는 쨍한 하늘을 만났다.

집권 중반을 지나며 이제는 맑은 하늘 속에서 종종 구름을 보는 것 같다.
'건강도 성과도 예전 같지 않다'고 고백하는 세종, 그리고 '왜 예전처럼 의논하지 않냐'고 따지는 신하와 유생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고한 물결을 느낀다.
앞으로 남은 10여 년은 어떤 하늘을 만날까.
다음주 화요일, [실록공감] 2기의 마지막 시간에 우리는 또 어떤 세종을 만날까.

(그림 : 몽유금강산도 18, 작가 : 박일선)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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