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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원연구소공감]대표 :: 세종이야기꾼 :: 실록연구자 :: 소통 디자이너 :: 010-8014-7726 :: chewonoh@gmail.com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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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직 명칭 및 그 업무 내용 등 :

_역주 경국대전 번역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역사연구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6. (절판. 헌책방 혹은 도서관에는 구비되어 있음)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3587939


_위의 책보다 더 보기 편한 '관직 사전'류가 몇가지 있습니다. 살펴보시고
 마음에 드시는 것을 고르면 좋겠습니다.


2. 실록, 사관의 체계 등 :
_조선왕조실록 어떤 책인가, 이성무, 동방미디어, 1999. (절판. 헌책방 혹은 도서관에는 구비되어 있음)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83293


3.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왕조실록사전 :
http://encysillok.aks.ac.kr/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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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에는 세종실록 10년의 기사를 함께 읽었습니다.

이 해에도 명나라와의 외교, 특히 사신들로 인해 세종과 조선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사신으로 정식 외교관이 아닌 환관이 파견되었는데, 그들은 대체로 어렸을 적에 고려나 조선에서 중국 황실에 바친 남자들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물품들을 요구하고, 비싼 값으로 상품을 매매해가며, 자신의 친인척에게 벼슬을 요구하고, 심지어는 조선의 관리에게 매질을 가하는 등 횡포가 막심했습니다.


현재도 '사대외교'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요.

그 유래가 『맹자孟子』에 나와 있습니다.


惟仁者能以大事小,是故湯事葛,文王事昆夷; 惟智者以小事大,故大王事,句踐事吳。 

오직 어진 자라야 큰 나라로써 작은 나라를 섬길 수 있습니다. -중략- 오직 지혜로운 자라야 작은 나라로써 큰 나라를 섬길 수 있습니다

(『맹자』 「양혜왕 하梁惠王下」)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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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27에는 세종 9년을 함께 읽었습니다.

이날 강의 내용에는 명나라 조공 및 사신의 횡포, 양녕대군으로 인한 논쟁, 황희의 사위인 서달徐達의 살인 및 그 조작 등 굵직한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집현전응교集賢殿應敎 권채權採의 잔혹한 행적과 관련된 세종의 언급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권채는 "시문詩文을 다 잘하여 문형文衡을 받아 왔다"(세종 20년 5월 10일)고 평가를 받을 만큼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며,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입니다.

그의 정부인은 심한 투기로 첩인 덕금을 동물 이하로 학대했고, 권채는 이를 알면서방관했지요. 

거의 시체에 가까운 덕금의 모습이 우연히 발각되었고, 그 처리 문제로 인해 논쟁이 일어납니다.

이에 대해 세종이 말씀하시지요.


"임금의 직책은 하늘을 대신해 만물을 다스리니, 만물이 그 처소를 얻지 못하여도 대단히 상심할 것인데 하물며 사람일 경우야 어떻겠는가[人君之職, 代天理物, 物不得其所, 尙且痛心, 況人乎]. 진실로 차별없이 만물을 다스려야 할 임금이 어찌 양민良民과 천인賤人을 구별해 다스릴 수 있겠는가.” (세종실록 9년 8월 29일)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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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20에 강의했던 내용을 공유합니다.

세종 8년(1426년)에는 세종의 재위기간 33년을 통틀어서도 굵직하달 수 있는 사건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우선, 서울 시내에서 일어난 연쇄방화 사건을 들 수 있겠습니다. 

한양 도성 내 방화사건이 연이어 민가 2천여 채가 연소되고, 사망자는 32명에 이르렀습니다.

이 사건을 겪으며, 현재의 소방청에 해당하는 '방화도감'이 설치되는 등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방책들이 마련됩니다.


또 하나의 사건을 들자면 대규모 뇌물 스캔들이 있었습니다.

'김도련金道練 게이트'라고 제가 이름을 붙였는데요.

김도련이 정부 고위 관료들에게 광범위하게 노비를 뇌물로 바쳐, 재판 결과를 유리하게 끌어간 사건들이 발각됩니다.

조사를 하다 보니, 그 중에서도 조말생은 10여 년간 요직에 있으면서 노비 36명 등 어마어마한 뇌물수수를 기록하게 되지요.

본 사건은 '조말생趙末生 뇌물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거의 매해 가뭄과 흉년이 드는 가운데, 민심이 흉흉하여 방화 사건은 일어나고, 지근 거리의 신하들은 부패의 고리가 얽히고 설킨 상황.

아이고, 누구와 함께 이 나라를 꾸려 갈꼬.

세종의 한숨이 여기에까지 들리는 듯합니다.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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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13일에는 세종 7년에 대해 강의하였습니다.

이 해에는 화폐개혁으로 인한 기사가 눈에 띄었는데요.


앞서 아버지 태종 때에 저화楮貨, 즉 닥나무 껍질로 만든 종이 돈을 발행한 바 있지요.

'겨우 종이 쪼가리'가 현물을 대체하여 돈으로서 기능한다는 사실이 일반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위조도 용이한 탓에 저화는 원활하게 유통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세종은 종이보다 돈의 느낌이 나는 동으로 조선통보寶라는 동전을 주조하여 화폐개혁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현물 경제에 익숙한 백성들에게는 이 또한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세종대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이 화폐개혁을 꼽으며, 돈이 원활하게 유통되는 경제 구조가 형성되지 않았던 것을 그 주요 원인으로 봅니다. 

결국, 당시는 돈이 유통되기에는 경제 체계가 미숙했던 때였던 것입니다.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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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31에 강의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세종 6년, 한해를 정리하며, 저는 열쇠말로 '자신自新'을 제시하였습니다.

'자신'은 '스스로 새로워짐'을 가리키는 유가儒家의 주요 개념으로, 주희朱熹(주자)는 『대학장구大學章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自新新民,皆欲止於至善也


스스로를 새롭게 하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은

모두 지극한 선에 머무르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자신'은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중요한 덕목입니다.

스스로를 혁신시켜 나가야 할 뿐 아니라 조직원, 아랫사람들에게도 '어제와 다른 참된 나'로 살아가게끔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오랑캐'로 불리며 우리보다 문화적으로 열등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야인(여진족), 그리고 '트러블 메이커' 양녕대군이 스스로 새로워지기를 기대했던 세종.

이러한 그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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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23에 강의한 내용입니다.

세종 5년은 매해 연잇는 가뭄과 흉작의 축적으로 인해, 흙을 파먹는 백성들이 있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열쇠말로 ‘경세제민經世濟民’을 제시하였습니다.

경세제민이 현재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경제Economy'의 원어라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세상을 잘 다스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함'을 가리키던 말이 이제는 경기, 경제활동, 절약 등으로 의미가 한정된 점이 씁쓸합니다.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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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록공감 06_세종과 소방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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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享生生之樂, 세종실록 24년 1월 7일]

세종과 더불어, ‘나와 다른 당신’과 공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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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수도방위사령부에 해당하는 한성부漢城府에서 보고가 올라옵니다. 근래에 서울 도성 안에서 하룻밤에도 두세 곳씩 방화로 인해 화재가 일어난다는 내용이었습니다(세종실록 8년 2월 12일).

그로부터 3일 후 한양에 큰 불이 납니다. 현재의 공정거래위원회와 유사하게 시장을 관리·감독하는 경시서京市署와 북쪽의 행랑, 중부·남부·동부의 인가 2천여 호가 연소되고, 사망자는 32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렇게 위급한 때 하필 세종은 강원도로 군사훈련인 강무講武를 떠나 서울에 없습니다. 이에 중전인 소헌왕후는 세종을 따라 나서지 않은 신료들을 소집하여, 불끄기를 진두지휘합니다. 이날 점심 때 일어난 불은 저녁에 진화가 되었고, 다행히 나라의 뿌리를 상징하는 종묘를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세종실록 8215일).


강원도에서 강무하던 세종은 화재에 대한 보고를 받고, 서울로 돌아갈 차비를 합니다(세종실록 8년 2월 16일). 그런데 그 사이에 또 큰 불이 일어납니다. 현대의 구치소에 해당하는 전옥서典獄署와 행랑 8간, 종루鍾樓(현재 보신각) 동쪽의 인가 2백여 호가 연소되었습니다(세종실록 8년 2월 16일). 당시 한양 내 인가가 18,794호였는데(세종실록 지리지), 이틀간 약 13%가 연소되는 큰 사고였습니다.

피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화재로 인해 도둑이 기승을 부리고, 불이 번지지 않은 집에서도 황급히 화재를 피하다가 재산을 전부 망실하였습니다(세종실록 8년 2월 16일).


서울은 극도로 혼란한 상황이었겠지요. 이에 세종은 화재를 입은 백성들에 대한 식량・치료・장례 등의 지원책(세종실록 8213일), 그리고 집을 지을 재목을 마련할 방도를 지시합니다(세종실록 8219일). 또한 주택 바깥에 방화벽을 쌓고, 성내의 도로를 넓게 만들어 진입을 용이하게 하는 등 화재 방비책을 수립합니다(세종실록 8220일). 불탄 가옥의 보수를 위해 별요別窰를 설치하여 싼 값으로 기와를 보급하게도 합니다(세종실록 8229일).


가장 획기적인 정책은 소방청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금화도감禁火都監’을 설치하고, 24명으로 행정조직을 구성한 것입니다(세종실록 8226일). 아울러 금화도감에서 소방할 때에는 통금시간에도 출동할 수 있도록 신분증을 제공하는 등 상설기관으로서 소방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합니다(세종실록 8년 3월 3일).


이어서 소방관에 해당하는 금화군禁火軍에 대한 정책을 보강합니다. 급수를 지원해줄 인원과 소방장비 지급에 대한 세부 사항, 그리고 소방에 공로가 있는 금화군의 포상책 등을 국가 차원에서 마련합니다(세종실록 13년 5월 13일).


대통령 공약사항 중 하나였던 소방청 독립이 정부조직법 개정안 시행일인 지난 7/26에 이루어졌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박근혜 정부는 소방방재청을 해체하고, 신설한 국민안전처에 소방 사무를 흡수시킨 바 있는데요. 이번에 국민안전처를 폐지하며, 행정안전부 소속으로 소방청을 신설한 것입니다. 소방 조직이 독립 기구로 개편된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이라고 합니다.


소방청 독립에만 박수칠 일이 아닙니다. 이젠 소방관의 처우 개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최근까지 소방관이 대부분 지방공무원의 신분이기에, 지방자치단체의 부족한 예산으로 인한 고충이 컸습니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목장갑을 끼고 화재현장에 나선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리기도 했지요. 이제 소방청으로 격상한 만큼 국가가 소방관의 안전과 자존감을 지켜주기를 바랍니다. 소방관은 국민을 보호하는 국민입니다.


* 참고문헌 :

1.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2. 경향신문, 2017-07-20, 「중소기업청 ‘부’로 격상하고 소방청 신설」.

3. 소방방재신문, 2017-07-21, 「역사상 첫 단독 소방청 탄생… 세부 조직 초읽기」.

4. 인사이트, 2017-06-08, 「'소방청 부활'로 개선 기대되는 소방관들의 처우 5가지」.

5. 한국경제, 2017-05-10, 「지자체 예산 없어 목장갑 끼고 출동하는 소방관…'국가직 공무원' 숙원 이룰까」.


(사진 : 인사이트)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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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토)에 신청서 마감 및 검토를 마친 후, '통通'을 받은 분들께 직접 알려드릴 예정입니다.

세종을 포함한 옛 왕들은 책문을 통해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될만한 말을 청취하고자 하였습니다.

여러분께서 제출해주실 신청서가 [실록공감], 세종, 공부 등에 대해 경청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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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에 강의했던 세종 4년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해에는 아버지 태종이 훙서하는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열쇠말로 ‘그칠 지止’를 선정했습니다.

그간 아버지 태종은 상왕으로서 국정 운영의 키를 쥐고 있었는데요.

그의 죽음으로 이제 태종의 시대는 그치고, 본격적으로 세종호가 출발합니다.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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