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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원연구소공감]대표 :: 세종이야기꾼 :: 실록연구자 :: 소통 디자이너 :: 010-8014-7726 :: chewonoh@gmail.com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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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즉위 600주년 기념 시리즈 강연.
매달 1회, 1년 12회, 세종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우리 음악이 어우러질 예정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몇 곳에 보도가 되었습니다.


http://www.newsfreezo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36378

(출처 : 뉴스프리존)



이번주 목요일 저녁이 그 장도의 첫날로, 주제는 {충녕, 세종이 되다}.

제가 12회 강연의 첫번째 주자로 뛰게 되었습니다.

충녕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자가 어떠한 과정을 거치며, 임금이 되는가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1년 농사의 시작을 맡은만큼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돠!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8012401032709043001

(출처 : 문화일보)



*강의 : 오채원, 김영옥, 김기섭, 배일동, 조성환, 김슬옹 등 초호화캐스팅
*일시 : 매달 마지막 목요일 저녁 7-10시
*장소 : 다산성곽길 예감터여민
*주최 : 문화예술감성단체 여민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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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올해는 세종이 즉위한 지 10주갑, 즉 6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회갑回甲·환갑換甲 등으로도 불리는 주갑周甲은 동아시아문화권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60갑자를 다 지내고 다시 시작인 갑甲으로 되돌아오는 때이거든요.

하나의 큰 마무리이자 또 시작점이 되기에, 우리는 61세 생일을 중요하게 지내왔습니다.



'겨레의 스승'으로 불리는 세종이 왕위에 오른지 60주갑, 즉 600주년이 되는 올해를 어떻게 기념하면 좋을지 생각이 많았습니다.

세종 연구자만이 아니라, 가벼운 관심이 있는 분들도 함께 어울렁더우렁 즐길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어떻게 세종을 만나게 됐는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는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세종실록을 함께 읽은 도반들이 중심이 되어, 세종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시각에서 나누는 시간을 마련하였습니다.




매달 마지막 목요일 저녁 7시, 12개의 테마 강연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한의학, 동양철학, 자연과학, 훈민정음학,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해한 세종, 그리고 각 테마에 어울리는 악기에 대한 이야기 및 연주를 들려드립니다.

그 시작은 제가 맡았습니다.

<충녕 이도李祹, 세종이 되다>

세종이 어떠한 사람이었기에 왕이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친 아버지 태종에 대한 이야기 등을 준비하였습니다. 

선착순 10분에 한하여 무료 수강의 기회를 제공하니 서둘러주세요!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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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릉에서의 실록강독] 4주 과정이 끝났다.

동구릉 내 건원릉의 주인인 태조의 이야기를 태조실록, 태종실록, 세종실록, 연려실기술, 선원계보기략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 읽어보았던 시간.
아울러 세종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어 유익했다.
완죤 사심 충족의 시간ㅎ

빡빡한 일정 속에서 교재까지 제작하느라 울고 싶은 때도 있었지만, 나 스스로가 재밌어서 몰입한 시간이 더 길었다.
수강생들이 대체로 실록을 처음 접한 분들이라, 역사적 배경, 용어, 관직 등에 대한 설명을 요즘 개념으로 풀어드리고자 애썼다.
또한 큰 틀을 이해시키며 실록도 구절구절 읽어내야 하는데, 4주라는 길지 않은 시간이 주어진 터라, 내용 구성에서도 고민을 좀 많이 했다.

책걸이 떡을 먹으며 소감을 나누는데, 나만 아쉬운 것은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에 감사했다.
그리고 이 과정의 시작과 끝을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내년에는 수강생 자신의 이야기를 발굴할 수 있는 시간을 보다 더 많이 만들어가고 싶다.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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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악의 자연재해로 기록된 17C 경신대기근(1670술년-1671해년). 이때 인구의 1/10이 사망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다소 못 미칠 지 모르겠지만, 세종대에도 큰 기근이 세 차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세종 재위 26년 되던 해에 찾아온다.


'
나물만 먹은 낯빛'으로 들판을 뒤덮은 백성들.
굶주린 사람들이 흙을 파먹는다는 보고.
구휼의 미비를 임금께 고하여 견책을 받을까봐 길거리에 백성들을 못 나오게 막은 관리.


우연히 하늘의 재앙을 만나더라도 사람의 힘으로 구제할 수 있다(세종 26/7/25), 즉 ‘하늘이 내리는 바는 어찌할 수 없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다 해야 한다는 소신을 평소부터 밝혀왔던 세종.

그는 세법인 공법貢法을 손보고,
민간 구휼 창고인 사창법 社倉法의 도입을 논의하고,
치수를 위한 저수지 건설을 고려하고,
백성들의 일상에 영향이 가장 큰 공무원인 수령들의 정신교육 등을 실시한다.
세종에게는 위기가 (시스템 및 사람을 점검하고 혁신하는) 기회였다.


경신대기근 참고 기사 :

http://www.ddanzi.com/ddanziNews/134074538

http://www.ddanzi.com/ddanziNews/134361707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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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황금색을 무척 좋아하는 터라, 트럼프타워에 이어 백악관 내부도 황금색으로 도배했다는 보도를 종종 접합니다.

사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황(금)색은 황제의 색입니다.

오행五行에서 중앙[土]에 해당하는 황색은 황제 의복의 색이라, 외교적으로 제후국의 형식을 취했던 조선에서는 임금도 원칙적으로 입을 수 없었답니다.

그후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로 등극하며 황금색 옷을 입게 됐습니다.


임금이 병조 판서 한확(韓確)·예조 판서 김종서(金宗瑞)·우참찬 이숙치(李叔畤)에게 이르기를 "고려 공민왕 때에 참람되게 십이장(十二章)의 옷을 입고, 모든 물건은 다 황색(黃色)을 사용하던 것을 태조께서도 다 개혁하지 못하였다가, 태종조(太宗朝)에 이르러 황색 사용을 금지함이 엄중하고 분명하게 되었음이 전장(典章)에 실려 있다. 오늘에 이르러서도 궁중의 복식(服飾)으로 간혹 황색을 사용한 것이 있으나, 궁중의 일이야 고치기 무엇이 어렵겠는가. 중앙·지방의 모든 남녀(男女)의 누렇게 물들인 의복을 엄금함을 거듭 밝히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여러 사람들이 말하기를 "헌부(憲府)로 하여금 금단(禁斷)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세종 26/#7/23)

-

사헌부에 전지하기를 "누른 빛깔은 참람되게(황제의 예도를 침범하여) 사용할 수 없으므로, 그것을 금단하는 법이 《속전(續典)》에 뚜렷이 실려 있는데도, 지금 양가(良家)의 부녀와 여기(餘妓)·공사 천인(公私賤人)까지, 혹은 노상(路上)이나 연회에서 황색(黃色)으로 물들인 옷을 드러내 놓고 착용(着用)하며, 신부(新婦)가 동뢰(同牢)하는 날과 처음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에게 뵈일 때에도 다황색 옷을 착용하기에 이르렀으니, 지금부터는 엄격하게 금함을 거듭 밝히고 착용하지 못하게 하라." (세종 26/#7/24)


* 관련 기사 :

http://news.joins.com/article/21167350


http://www.edudonga.com/?p=article&at_no=20151203093935805986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74640&cid=59022&categoryId=59022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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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거리 측량기'이며, 그 매커니즘이 영국에 287년 앞섰다는 기리고(차).

즉 이 반자동 수레형 거리 측량기는 세계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장영실이 발명했다고 추정되며, 토지측량과 그에 따른 합리적 세금부과, 토목공사, 지도 제작 등에 활용했다.

왕과 왕비가 온수현(溫水縣)으로 행행하니, 왕세자가 호종(扈從)하고, 종친과 문무 군신 50여 인이 호가(扈駕)하였다. 임영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한남군(漢南君) 이어(李𤥽)로서 수궁(守宮)하게 하고, 이 뒤로부터는 종친들에게 차례로 왕래하게 하였다. 임금이 가마골[加麿谷]에 이르러 사냥하는 것을 구경하였다. 이 행차에 처음 초여(軺輿)를 쓰고 기리고(記里鼓)를 사용하니, 거가(車駕)가 1리(里)를 가게 되면 목인(木人)이 스스로 북을 쳤다. (세종실록 23년 3월 17일)


* 관련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zTIiIlv2fvE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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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2017.4.26)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던 내용.

최근 신고리 5, 6호기 공사재개와 관련된 공론화 과정을 보며, 대통령의 소통관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에 여기에 다시 포스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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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TV토론에서, 다섯 명 중 두 명이 '닮고 싶은 지도자'로 세종을 꼽았다.

세종을 언급해서가 아니라, 언급한 이유에서 많은 차이가 보여 흥미로웠다.

한 사람은, 장영실의 등용을 닮고 싶은 이유로 들었는데, 스티브 잡스의 조선 버젼 같다.

그리고 소통리더십을 이야기했지만, 효과 검증의 채널로 백성을 설정하였다.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 않아서 하나만 집중해야 했을 텐데, 이 두 이유를 모두 포기할 수 없었나보다.


이에 비해, 다른 한 사람은 한 가지에 집중했다.

공법貢法이라는 세제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여론 수렴을 말했다.

한 사람은 결과, 또 한 사람은 과정을 거론했다.

동일한 인물을 두고 논했지만 이렇게 다르다.


* 해당 영상 :

http://tv.naver.com/v/1633063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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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에 세종 재위 21년의 기사를 함께 읽었다.
안개 속에서 즉위하고 인턴십을 거쳤던 이도李 씨는 10여 년간 줄줄이 성과를 내는 쨍한 하늘을 만났다.

집권 중반을 지나며 이제는 맑은 하늘 속에서 종종 구름을 보는 것 같다.
'건강도 성과도 예전 같지 않다'고 고백하는 세종, 그리고 '왜 예전처럼 의논하지 않냐'고 따지는 신하와 유생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고한 물결을 느낀다.
앞으로 남은 10여 년은 어떤 하늘을 만날까.
다음주 화요일, [실록공감] 2기의 마지막 시간에 우리는 또 어떤 세종을 만날까.

(그림 : 몽유금강산도 18, 작가 : 박일선)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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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젊어서 호화로우면 장성하여 교만하고, 젊어서 고생을 겪으면 커서 성취함이 있다."
[人少習豪華, 則壯而驕逸, 少涉艱苦, 則長而成就。]
(세종실록 21년 5월 4일)

옛사람들은 초년 출세出世, 중년 상처喪妻, 노년 빈곤貧困이 '인생의 3대 불행'이라고 하여, 젊은 시절의 성공을 오히려 경계하였다.
소시민인 내게는 무척 약오르는 말이지만ㅎㅎ
젊어 고생을 사서 하고 싶진 않다.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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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실록공감]에서 세종 재위 20년의 실록을 함께 읽었다.
고질병이 하나하나 더해져 스스로 노쇠해짐을 자각하며, 세자섭정 등 미래를 준비하는 세종.
긴 안목에서 근본을 곱씹는 그를 보고 있자니 논어 구절이 떠올랐다.

子曰: "人無遠慮, 必有近憂."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멀리 앞을 내다봄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데서 근심이 생긴다." 《논어論語》《위령공衛靈公》)

이제 [실록공감] 2기가 2주 남았다.
3기는 어떠한 발전된 형태로 진행할 지, 그리고 '2017년 실록공감' 팀의 졸업(?) 이후는 어떻게 할 지 생각이 많다.
아울러 일, 공부, 사람과의 만남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나는 어떤 시야로 임해야 할 지 떠올리자니 마음 속에 바람이 분다.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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