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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원연구소공감]대표 :: 세종이야기꾼 :: 실록연구자 :: 소통 디자이너 :: 010-8014-7726 :: chewonoh@gmail.com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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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보는 사약의 성분과 효과'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7.08.23 [ 실록공감 09_조선시대 사약 ]

[ 실록공감 09_조선시대 사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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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享生生之樂, 세종실록 24년 1월 7일]

세종과 더불어, ‘나와 다른 당신’과 공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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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은 글쓴이의 사심에 의해 갑자기 편성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지나간 라디오를 듣는데 <과학으로 보는 사약의 성분과 효과>가 방송되더군요.

조선시대에 임형수林亨秀는 열여덟 사발 그리고 송시열宋時烈은 세 사발의 사약을 마셨다는 주장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동시에 어렸을 적 역사 만화에서 본 장면이 가물가물 떠올랐고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또 어디까지가 ‘썰’일까요?

『조선왕조실록』 등의 역사 기록에는 어떻게 기술되어 있는지 ‘팩트 체크’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우선, 사약은 ‘죽을 사死’가 아닌 ‘줄 사賜’ 자를 씁니다(사약=賜藥≠死藥).

단어의 의미 상, ‘사람을 죽이는 약’이 아니라 ’은혜를 베푸는 약‘인 셈이지요.

부모님이 내려주신 목과 사지를 훼손시키지 않고 나름 존엄하게 죄인을 죽게 해주는 것이 임금의 은혜라면 은혜일 수 있겠습니다.

임금이 귀하게 여기는 신하에게 약을 선물하는 일도 ‘사약賜藥’입니다만, 여기에서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실록에서는 사약과 관련된 몇 가지 용어가 발견됩니다.

_사사賜死 : 죄질이 중한 죄인에게 임금이 독약을 마시게 하여 자결하게 함. (‘죽음을 선물함’이라고 해석하니 조금 아찔합니다만)

_후명後命 : 귀양지에 있는 죄인에게 사약을 내림.

_수명受命 : 후명을 받음, 즉 사약을 받음.

_사명死命 : 자결하라는 명령.


그리고 실록에는 사약을 받을 수 있는 자격, 사약 받을 때의 의식 등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법전인) 《대전大典(경국대전經國大典)》에 당상관堂上官(정3품 이상의 고위 관료) 이상으로, 사형에 해당되는 죄를 범한 자는 사사(賜死)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조실록 9년 5월 20일)


뜰 아래로 내려가 북쪽(임금이 계신 곳)을 향하여 네 번 절하였다. 그 후 전지傳旨(임금의 말씀)를 들은 뒤 또 네 번 절하고 드디어 사명死命을 받았다. (경종실록 2년 4월 18일)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유엄柳渰이 사사賜死의 명을 가지고 이르니, 조광조趙光祖가 유엄에게 가서 ‘나는 참으로 죄인이오.’하고 땅에 앉아서 묻기를 ‘사사의 명령만 있고 글은 없소?’ 하매, 유엄이 글을 적은 쪽지를 보이니, 조광조가 ‘내가 전에 대부大夫(고위직) 줄에 있었는데, 어찌 겨우 쪽지만 도사에게 부쳐서 증빙으로 삼아 죽이게 하겠소? 당신의 말이 아니었다면 믿을 수 없을 뻔하였소.’ 하였다. -중략- 조광조는 임금이 모르는 일인데 조광조를 미워하는 자가 중간에서 마음대로 만든 일이 아닌가 의심한 것이다. 따라서 누가 정승이 되었고 심정沈貞이 지금 어느 벼슬에 있는가를 물으매 유엄이 사실대로 말하니, 조광조가 ‘그렇다면 내 죽음은 틀림없소.’ 하였다. 아마도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이 다 당로에 있으므로 틀림없이 죽일 것이라는 뜻이겠다. -중략- 조광조가 웃으며 ‘죽으라는 명이 계신데도 한참 동안 지체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 아니겠소? 그러나 오늘 안으로만 죽으면 되지 않겠소? 내가 글을 써서 집에 보내려 하며 분부해서 조처할 일도 있으니, 처치가 끝나고 나서 죽는 것이 어떻겠소?’ 하기에 유엄이 허락하였다. 조광조가 곧 들어가 조용히 뜻을 죄다 글에 썼는데 ‘임금을 어버이처럼 사랑하였고, 나라를 내 집처럼 근심하였네. 해가 아래 세상을 굽어보니, 충정을 밝게 비추리.’ 하였다. 또 거느린 사람들에게 ‘내가 죽거든 관을 얇게 만들고 두껍게 하지 말라. 먼 길을 가기 어렵다.’ 하였다. 자주 창문 틈으로 밖을 엿보았는데, 아마도 형편을 살폈을 것이다. 글을 쓰고 분부하는 일을 끝내고, (사약을 받고도 바로 죽지 못하여) 거듭 내려서 독하게 만든 술을 가져다가 많이 마시고 죽으니,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다 눈물을 흘렸다. (중종실록 14년 12월 16일)


위에서 본 것처럼, 조광조는 임금께 드리는 시까지 쓰고 사약을 받았으니 문학적인 죽음이라고 할까요?

이어서 임형수와 송시열이 과연 사약을 몇 사발 받았는지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실록은 물론이고 승정원일기, 공사견문록, 고문진보, 통문관리, 사마방목 등 별별 사료를 찾아보았는데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아쉽지만 그들이 사약을 받던 모습만 아래에 붙입니다.


임형수는 그때 파직되어 집에 있었는데, 죽을 적에 양친에게 하직 인사하고 그 아들을 돌아보며 ‘내가 나쁜 짓을 한 일이 없는데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르렀다. 너희들은 과거에 응시하지 말라.’ 하고, 다시 ‘무과일 경우는 응시할 만하면 응시하고 문과는 응시하지 말라.’ 하였는데 조금도 동요하는 표정이 없었다. 약을 들고 마시려 하다가 의금부 서리를 보고 웃으며 말하기를 ‘그대도 한 잔 마시겠는가?’ 하였다. 어떤 이가 집 안에 들어가서 죽는 것이 좋겠다고 하니, 임형수는 ‘나는 마땅히 천지의 신기神祗가 둘러서서 환히 보는 데서 죽을 것이다. 어찌 음침한 곳에 가서 죽겠는가.’ 하고, 드디어 약을 마시고 죽었는데, 듣는 이들이 슬퍼하였다. (명종실록 2년 9월 21일)


이때 송시열이 제주濟州에서 강제 구인되어 (서울로) 돌아오는데 바다를 건너와서 중궁中宮(인현왕후)을 이미 폐비한 것과 오두인吳斗寅·박태보朴泰輔가 간언하다가 죽은 것을 듣고는 식음을 전폐하였다. (서울로 압송되어 가던 중) 정읍井邑에 이르러 사사賜死의 명을 받자, 유소遺疏(죽을 때 임금께 올리던 상소) 두 본本을 써서 손자 송주석宋疇錫에게 주어 다른 날을 기다려 올리게 하였다. 또 훈계하는 말을 써서 여러 자손에게 남겼다. -중략- "내가 병이 심하여 잠시를 기다릴 수 없으니, 명을 받는 것을 늦출 수 없다." 하고는 드디어 조용히 죽음에 나아가니, 이때 나이가 83세이다. (숙종실록 15년 6월 3일)


2차 자료들을 보니, 『유분록幽憤錄(을사전문록乙巳傳聞錄)』에는 임형수가 사약을 열여섯 사발 마시고도 멀쩡하여 두 사발을 추가로 마셨는데도 죽지 않았다는 해프닝이 기록되어 있다는데,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혹시 신빙성 있는 기록을 발견한 분이 계시다면 신고 부탁드립니다.

(이로써 팩트 체크는 반 토막 내지 2/3 토막 정도 되겠습니다.)


* 참고문헌 :

1.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2. tbs교통방송, 2017-07-05, ≪김어준의 뉴스공장≫, <과학 같은 소리하네> 코너.

( https://www.youtube.com/watch?v=lL3zw4Qcvr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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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전래놀이 승경도陞卿圖 놀이판)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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