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두보, 심사정, 그리고 우리의 희우喜雨
이래적인 가뭄이라는 뉴스가 연이으며, 기우제를 지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까지들 했는데, 어제부터 반가운 비가 내려준다.
그야말로 희우喜雨가 아닐 수 없다.
이 반가운 비,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비, 즉 희우라는 이름의 정자가 현재의 합정동에 있었으며, 심지어 그 이름을 세종께서 지으셨다는 기사가 <세종실록>에 남아 있다.
임금이 (농사 상황을 시찰하러 나가셨는데) 홍제원洪濟院·양철원良哲院에서 영서역迎曙驛 갈두 들에 이르기까지 고삐를 잡고 천천히 가는 길에 밀·보리가 무성한 것을 보고, 임금이 흔연히 기쁜 빛을 띠고 정자 위에 올라 막 잔치를 벌이는데, 마침 큰 비가 좍좍 내려서 잠깐 사이에 네 들에 물이 흡족하니, 임금이 매우 기뻐서 이에 그 정자의 이름을 희우정喜雨亭이라고 지었다. (세종실록 7년 5월 13일)
희우정이라는 이름은 실록에 그 유래가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인 두보杜甫(712-770)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봄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한다.
역시 당송팔대가로 평가되는 두 사람, 즉 구양수歐陽修(1007-1072)와 소식蘇軾(1037-1101)의 편지를 엮은 책인 <구소수간歐蘇手簡>을 세종께서 어린 시절에 독파하셨다는 실록의 기사(세종실록 5년 12월 23일; 단종실록 1년 6월 13일; 명종실록 1년 6월 9일)를 보면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好雨知時節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當春乃發生 봄이 되니 이내 내리네.
隨風潛入夜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와
潤物細無聲 촉촉히 만물을 적시네, 소리도 없이.
野徑雲俱黑 들길은 구름이 낮게 깔려 어두운데
江船火独明 강 위의 배만 홀로 불빛만 밝네.
曉看紅濕處 새벽에 붉게 젖은 곳을 보니
花重錦官城 꽃들이 겹겹이 금관성에 피었네.
<춘야희우>는 조선 후기의 문인 화가인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의 그림에 일부가 화제畫題로도 적혀 있다.
<강상야박도江上夜泊圖(강 위에서 밤에 정박한 (배의) 그림)>의 상단에서 野徑雲俱黑 江船火独明가 보인다(고 한다. 찾은 그림마다 상단이 잘려서 전체가 내 육안으로 확인되지는 않는다).
심사정의 불행했던 가정사를 생각하면 '희우'라는 단어가 어울릴까 싶다가도, 그렇게 예술은 승화되는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도 든다.
(1747년, 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