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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원연구소공감]대표 :: 세종이야기꾼 :: 실록연구자 :: 소통 디자이너 :: 010-8014-7726 :: chewonoh@gmail.com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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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토)에 신청서 마감 및 검토를 마친 후, '통通'을 받은 분들께 직접 알려드릴 예정입니다.

세종을 포함한 옛 왕들은 책문을 통해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될만한 말을 청취하고자 하였습니다.

여러분께서 제출해주실 신청서가 [실록공감], 세종, 공부 등에 대해 경청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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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에 강의했던 세종 4년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해에는 아버지 태종이 훙서하는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열쇠말로 ‘그칠 지止’를 선정했습니다.

그간 아버지 태종은 상왕으로서 국정 운영의 키를 쥐고 있었는데요.

그의 죽음으로 이제 태종의 시대는 그치고, 본격적으로 세종호가 출발합니다.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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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에 강의했던 세종 3년 차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해의 열쇠말을 저는 ‘실정實情’으로 설정했습니다.

백성들이 실제 처한 상황,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된 정서를 파악하고자 노력하는 신입 군주의 노력이 돋보인 해였기 때문입니다.


뉴스에 자주 오르는 보직으로 민정수석이 있습니다.

이때의 민정은 '民政'이 아니라 '民情'입니다.

즉 민중의 뜻을 파악하고 공유하는 업무가 바로 민정수석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정치뿐 아니라, 우리네 삶에서 원칙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실제, 현실에 부합하는가?’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공감능력이 필요합니.

앞으로 세종이 신료들, 백성들과 어떻게 공감해나갈지 기대해주세요.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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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록공감 05_세종과 고기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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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享生生之樂, 세종실록 24년 1월 7일]

세종과 더불어, ‘나와 다른 당신’과 공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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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고기를 좋아했다면서요?”

많은 분들이 제게 ‘세종 고기덕후설’의 진위에 대해 물어옵니다.

우선, 답은 ‘예’입니다.

실록을 보면, 세종의 ‘고기 사랑’은 아버지의 입을 통해 주변인들에게 널리 알려집니다.

“주상(세종)이 젊었을 때부터 고기가 아니면 밥을 먹지 못했다”고 태종이 증언한 이후(세종실록 2년 8월 29일), 주변인들은 열심히 고기를 챙기지요.


고기는 맛있기도 하지만, 여러 효용 가치를 내포합니다.

“먹는 것은 백성의 근본이 되고, 곡식은 소의 힘에서 나오므로” 농경사회에서 소는 무척 귀한 존재였습니다.(세종 7년 2월 4일)

국법으로 그 도살과 판매를 관리할 정도였지요.(세종 7년 2월 8일)

또한 닭・꿩・양의 고기는 의원醫員들이 갈증을 멎게 하는 약으로 세종에게 추천한 식품이었습니다.

그러나 닭은 이어댈 수 없고, 꿩은 사냥해야 하고, 양은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는 등의 이유로, 너무 약이 호사스럽다며 받아들이지 않으셨지요.(세종실록 13년 3월 26일)


옛사람들은 불행한 일을 맞았을 때 삼가는 모습을 보이며, 이러한 고기와 같은 고급 음식을 드시지 않았습니다.

세종도 어머니인 원경왕후(세종실록 2년 8월 29일), 태조의 맏딸 즉 고모인 경신공주(세종실록 8년 3월 25일), 이복동생인 혜령군(세종 22년 6월 29일), 며느리인 세자빈 권씨(세종 23년 7월 29일) 등 가족 및 친인척의 상사를 당했을 때에 짧게는 며칠 길게는 한 달 이상 고기 없이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함께 일해 온 신료의 초상에도 반드시 3일 간은 소찬을 드셨습니다.(세종실록 8년 3월 25일)


세종은 초상 외에도 이상기후나 흉작을 맞으면, 고기 반찬을 정지시킵니다.

신하들은 태종의 유교를 언급하며 고기를 드시라 간청하지만, 세종은 이를 강력하게 뿌리칩니다.

이처럼 본인은 갖가지 이유를 대며 소찬素饌을 고집하지만, “나이 많은 늙은 대신은 하루라도 고기가 없어서는 안 된다”며 주변인의 섭생을 챙깁니다.(세종실록 28년 3월 27일)


사랑하는 부인 소헌왕후가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났을 때의 일입니다.

본인이 소찬을 드시는 것은 물론, 자녀들에게 묽은 죽만 마시게 하고 5일만에야 비로소 밥을 먹게 하셨던 분이(세종실록 28년 3월 24일), 늙은 신하들에게는 “50세 된 사람은 고기가 아니면 배부르지 않다”며 고기를 권합니다.(세종실록 28년 3월 28일)


이는 맹자가 한 말과도 맥이 닿는데요.

“50세가 되면 비단 옷이 아니면 따뜻하지 않고, 70세가 되면 고기가 아니면 배부르지 않다. 따뜻하지 않고 배부르지 않은 것을 ‘헐벗고 굶주림[동뇌凍餒]’이라 한다.”(『맹자孟子』「진심 상盡心上」)

맹자는 노인을 잘 보살피는 것을 ‘왕도정치王道政治’라는 이상향의 근본으로 제시한 바 있는데요.

세종 또한 약자가 ‘배부르고 등 따신’ 사회를 추구했습니다.


오늘(7/12)이 초복初伏으로, 무더위의 개시를 알리는 절기입니다.

‘보양식을 먹는 날’을 넘어, 노약자의 사망률이 급증하는 시기가 이제 시작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고기 덕후’라면, 고기 먹기 힘든 이들의 처지를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종이 고기를 좋아했다면서요?”

예, 앞서 본 것처럼, 세종에게 ‘고기는 사랑입니다’.


* 참고문헌 :

1.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2. 아시아경제, 2017-07-12,「어르신들 원기회복 위한 초복 삼계탕 봉사」.


(사진 : 아시아경제)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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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25에는 재위 2년째를 맞은 세종을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때 어머니인 원경왕후가 돌아가시는 큰 일을 겪는데요.

맏이 양녕대군 편에 서서 세자 교체를 반대했던 어머니께 보이는 세종의 효성에 아버지 태종이 감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내가 대비와 주상의 간 곳을 몰랐는데, 오늘에야 알고보니 주상이 대비의 학질()을 근심하여 몸소 필부의 행동을 친히 하여, 단마(單馬)로써 환자 두 사람만을 데리고 대비를 모시고 나가 피하여 병 떼기를 꾀하니, 심히 그 효성()을 아름답게 여긴다." (세종2/6/7)



여기에 대해 중용中庸』의 '성誠' 개념을 연결하여 이날의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誠者,天之道也;誠之者,人之道也。(성이라는 것은 하늘의 도이고, 성을 행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

정말 정성 가득한 세종의 모습이 그려진 해였습니다.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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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록공감 04_세종과 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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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享生生之樂, 세종실록 24년 1월 7일]
세종과 더불어, ‘나와 다른 당신’과 공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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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부터 ‘덥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나날이 이어지더니, 오늘은 급기야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다는 ‘긴급재난문자’까지 받았습니다.
재난 수준의 더위를 세종은 어떻게 해결하셨을까요?


때는 바야흐로 52세 되던 해의 여름.
세종이 “전에는 더위를 무서워하지 않았는데, 몇 년 전부터 더위가 들기 시작했다”고 고백합니다.
아마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 상태에서도 훈민정음 창제와 그 후속 작업들에 매진하며 체력이 고갈되셨을 듯합니다.
그러니 더위 무서운 줄 모르고 살던 분이 ‘요즘 들어 나도 더위를 먹더라’고 말씀하셨겠지요.


“손으로 물장난을 했더니 더운 기운이 저절로 풀렸다.”
참으로 소박하게, 세종은 더위 탈출법으로 해수욕도 뱃놀이도 냉수마찰도 아닌, 물에 손 담그기가 최고라고 추천합니다.
이마저도 혼자 즐기기 미안하셨는지, 가장 열악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죄수가 감옥에 있으면, 더위가 들기 쉬워 간혹 생명을 잃는 수가 있으니, 참으로 불쌍한 일이다.”


세종은 입으로만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즉각 행동으로 옮깁니다.
“더운 때가 되면, 동이에 물을 담아 감옥에 놓고 자주 물을 갈아서, 죄수에게 간혹 손을 씻게 하여, 더위 먹지 않게 하는 것이 어떠한가?” 
죄수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복지정책을 제안하고는 이것이 상시 운영되도록 법제화하고자 합니다.
“예전에 이 법이 있었는지 상고하여 아뢰라”고 집현전에 하명하시지요. (세종실록 30년 7월 2일)


그리고는 그 다음 달에 현재의 시도지사에 해당하는 각도의 감사들에게 명을 내립니다.
“1. 매년 (음력) 4월부터 8월까지는 감옥에 새로 냉수를 길어다가 자주자주 바꿔 놓을 것.
1. 5월에서 7월 10일까지는 한 차례 희망자에게 몸을 씻게 할 것.
1. 매월 한 차례 희망자에게 머리를 감게 할 것.
1. 10월부터 정월까지는 감옥 안에 짚을 두텁게 깔아 보온에 힘쓸 것.
1. 목욕할 때에는 관리와 옥졸이 직접 검찰하여 도망하는 것을 막을 것." (세종실록 30년 8월 25일)


7월 7일은 소서小暑, 즉 ‘작은 더위’라 불리며,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때입니다.
장마 뒤의 후텁지근함이 불쾌지수를 높이는 이런 때일수록, 나와 만나는 이에게 싱긋 웃음을 보여줄 수 있는 여유, 그리고 나보다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 ‘시원한 온정’을 보내는 배려를 보이면 어떨는지요?
‘내가 이렇게 더운데 다른 사람들은 괜찮을까?’ 염려하던, 나의 고통을 미루어 남을 배려하는 세종의 마음을 떠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 참고문헌 : 
1.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2. 뉴시스, 2017-06-14, 「‘빨리 온 무더위' 노인 등 취약계층 폭염 비상」. 
3. 민중의소리, 2017-07-05, 「초복, 30도 넘는 무더위...대체 어떤 날이길래?」. 
4. 브레이크뉴스, 2017-06-23, 「경기도, 무더위 쉼터 6천여 개 운영…취약계층 ‘집중 케어’」. 
5. 시민일보, 2017-06-29, 「중랑구 면목3·8동 주민센터, 7·8월 무더위 취약계층 얼음물 제공」. 
6. KBS뉴스, 2017-06-20, 「때 이른 무더위…여름이 두려운 쪽방촌」.


(사진 : 민중의소리)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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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18 [실록공감-나와 세종을 실록하다] 시간에 강의했던 내용을 첨부합니다.

재위 1년째 되던 해는 세종이 이제 걸음마를 해나가는 때였습니다.

서슬퍼런 아버지 태종의 주변 정리가 즉위년에 있었고, 그 다음해에는 차분하게 업무를 익혀가는 세종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발언을 통해 신하들의 정치적 견해, 사람 됨됨이가 조금씩 드러나는 것이 보였지요.

그래서 세종 1년의 열쇠말을 '지인知人'으로 정하였습니다.

맹자는 지인, 즉 '사람의 됨됨이를 아는 법'으로 언어, 표정, 사상에 대한 시비, 선악, 진위, 득실의 변별을 들었습니다.

앞으로 세종이 말을 통해 본, 신하에 대한 평가가 실록에 기재될 것입니다.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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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11 [실록공감-나와 세종을 실록하다] 시간에 강의했던 내용을 첨부합니다.

세종실록을 본격적으로 읽어나가기 전에 우선, 태종이 겪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소개하였습니다.

'성군 세종'이 아닌, '인간 이도'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세종에게 영향을 준 인물인 아버지 태종을 소개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양녕에서 충녕으로 세자를 변경하고, 그 바로 두달 여 만에 왕이 교체되는 빠른 호흡의 사건과 인물 등을 다루었습니다.

1418년 스물 두 살의 젊은 왕 세종, 그리고 그를 왕으로 훈련시키는 태종의 입장에서, 그 한 해를 돌아보며 '열쇠말(키워드)'을 '통痛'으로 맺음하였습니다.

태종도 세종도 아픈 한해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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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록공감 03_세종과 윤대輪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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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享生生之樂, 세종실록 24년 1월 7일]
세종과 더불어, ‘나와 다른 당신’과 공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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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이래로 이와 같은 가뭄은 보지 못했다”고 한탄할 정도로, 세종이 재위한 지 7년째 되던 해에는 한재가 극심했습니다(세종실록 7년 7월 7일). 이에 세종은 “죄는 실로 나에게 있다” 며 책임을 자신에게 돌립니다. 전통시대에는 하늘이 가뭄・홍수・혜성 등의 이상 기후・천문 현상을 통해 위정자를 견책한다고 여겼으며, 위정자는 이를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세종은 자신 혹은 법령의 잘못됨, 민생의 괴로움을 숨김없이 말하여, “나의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근심하는 지극한 심정에 도움이 되게 하라”는 왕명을 내립니다(세종실록 7년 6월 20일).


그러자 3일 후, 110명 이상이 제안한 스물세 가지 개선책이 보고됩니다. 그 중 하나는 ‘윤대輪對’라는 왕에 대한 신하의 일대일 대면 보고였습니다. “4품 이상의 관료들에게 매일 차례대로 왕에게 대답하게 하여 언로言路를 더욱 넓히고, 아랫사람이 자신의 심정을 다 아뢰는 과정을 통해, 신하들의 그릇되고 올바름을 살피시라”는 주문이었습니다. 
신료들이 다 모인 조회朝會와 같은 공식 석상에서는 말하기 힘들겠지만, 왕과 둘만 남게 되면 허심탄회하게 속사정을 표현할 수 있겠지요. 또한 고위직뿐 아니라, 중간급 직위의 신하와도 소통함으로써 그의 사람 됨됨이를 파악하면, 그 다스림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백성들에게 도움이 될 터입니다.
윤대를 실시하자는 제안을 세종은 즉각 수용합니다. “동반東班(문관)은 4품 이상, 서반西班(무관)은 2품 이상이 매일 들어와서 대답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립니다(세종실록 7년 6월 23일).


윤대에 임한 신료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합니다. 경창부慶昌府 소윤少尹(정4품, 궁궐 내 업무 관리) 고약해高若海는 윤대에 들어 아뢴 일이 무려 50여 조목이나 될 정도였습니다(세종실록 7년 7월 15일). 
윤대에서 제출된 제안은 국정 운영에 적극 활용됩니다. 예를 들어, 성균관에 온돌과 목욕탕을 설치하고, 항상 의사를 보내 학생을 치료하도록 조치를 취하는데, 이는 그 이틀 전의 윤대에서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정3품, 현재의 서울대총장) 황현黃鉉이 학생들이 습질濕疾에 걸리는 일이 많다고 보고한 바에 따른 것이었습니다(세종실록 7년 7월 19일).


최근 타인의 의견을 전면 배격한 국가 지도자의 발언이 보도되었습니다. 바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몇 달 전인 당선자 시절에, 자신이 "똑똑한 사람"이므로 “같은 내용을 같은 단어로 매일 들을 필요가 없다”며 국정 브리핑의 불필요함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정보마저 ‘고립주의’를 내세우던 그였건만, 대통령 취임 후 거의 매일 정보기관의 대면 보고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가 그래픽・표・사진 등 “이미지화된 정보 브리핑을 선호하는 탓에 정보의 민감성과 정보 수집 과정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윤대라는 민감성 높은 소통을 통해 신료와 유대를 형성하고, ‘민생의 괴로움[民生之疾苦]’을 해결하고자 했던 세종, 그리고 그와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트럼프의 사례를 우리의 위정자들은 참조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십상시十常侍’나 ‘문고리 3인방’과 같은 특정 소수 세력이 국정을 농단하는 사태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아울러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가 행해지기를 바랍니다.


* 참고 문헌
1.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2. 조선일보, 2017-05-31, 「트럼프, 정보기관 대면보고 매일 받아… 킬러 그래픽 이용한 브리핑 좋아해」.
3. SBS 뉴스, 2016-12-12, 「일일 브리핑 필요 없단 트럼프, "난 똑똑해…같은 단어·같은 내용"」.


(사진 : 뉴시스, 2017-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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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록공감 02_세종 가족 음악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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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享生生之樂, 세종실록 24년 1월 7일]
세종과 더불어, ‘나와 다른 당신’과 공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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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예술창의교육의 수혜자였습니다.
맏형 양녕대군이 14년간 세자로서 '군주론' 입시교육을 받은 데 비해,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본인이 선택한 것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태종은 어린 충녕에게 "너는 할 일이 없으니, 평안하게 즐기기나 하라" 고 말한 바 있는데요.
이는 어찌 보면, 세종에게 언감생심 왕좌에 곁눈질도 주지 말라는 경고를 한 셈입니다. 
이러한 태종의 심중을 이해했는지, 세종은 공부 외에, "글씨와 그림[서화書畫]·아름다운 돌[화석花石]·현악기 거문고와 슬[금슬琴瑟] 등" 예술을 즐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이론까지 섭렵하지 않은 바가 없었습니다(태종실록 13년 12월 30일).


이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도 세종은 음악에 마음을 많이 쓰셨다고 전해집니다(성종실록 9년 11월 7일). 
세종이 어린 시절에 거문고를 잘 타서, 형인 양녕에게 가르쳐줬고, 그래서 둘 사이가 좋았으며, 형제의 그 화목한 모습을 아버지 태종이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실록에 기록되어 있고요(태종실록 13년 12월 30일).
나중에 일가를 이루어서는 아들들에게 음악을 배우도록 권했답니다(세조실록 총서).
세종에게 음악이란 화합의 방편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실록을 보면 <세종 가족 음악회>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종친들이 모인 어느 날, 세종의 차남인 수양대군(이후 세조)이 피리를 불자, 자리에 있던 종친들이 모두 감탄합니다. 
그리고 학이 날아와 뜰 가운데에서 춤을 추는데, 나이 어린 금성대군(세종의 육남)이 이것을 보고는 홀연히 일어나서 학과 마주서서 춤을 춥니다(세조실록 총서). 
저는 실록에서 이 대목을 읽고는 눈을 감고 상상을 해보았는데요. 
한 폭의 그림이 절로 그려졌답니다.


2015년부터 세종이 누워 계신 여주 영릉에서 세종의 이야기, 그리고 그 내용과 연관 있는 우리 음악을 함께 들려드리는 음악회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세종이야기꾼'으로 참여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세종의 가족들에 대한 소개, 그리고 '세종 가족 음악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딱딱한 인문학 강좌에서 벗어나, 우리네 일상에서 소통되는 조선왕조실록, 그리고 '인간 세종'을 추구하며, 관객들과 가까이 만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실록으로 공감해가는 세종이야기꾼, 그리고 [실록공감]이 되도록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참고문헌-

1.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2. 『세종이야기 풍류방』 원고.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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