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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원연구소공감]대표 :: 세종이야기꾼 :: 실록연구자 :: 소통 디자이너 :: 010-8014-7726 :: chewonoh@gmail.com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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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의 국가공무원 전환을 맞아, 세종이야기꾼 오채원이 작성한 '조선시대에도 소방관이 있었을까?'는 세종시대의 소방청 및 소방관의 이야기를 다루었으며, 오마이뉴스 메인 기사로 채택되었습니다. https://bit.ly/3aYCw7C)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인 세종 8년 2월 12일, 한성부漢城府(지금의 육군수도방위사령부)에서 보고가 올라옵니다. 한양에서 방화 사건이 하룻밤에도 두세 건 일어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로부터 3일 후 한양에서 큰 불이 납니다. 현재의 공정거래위원회와 유사한 경시서京市署(지금의 탑골공원 부근)와 북쪽의 행랑(상가와 유사)들, 중부·남부·동부의 민가들을 합해 총 이천 채 이상의 건물이 연소되고, 사망자는 서른 두 명이나 됩니다. 여기에 신상을 확인할 수 없는 이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하니, 인명 피해 또한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위급한 때 국가의 최고통수권자인 세종은 하필 강원도로 군사훈련인 강무講武를 떠나 한양에 없습니다. 이에 중전인 소헌왕후는 세종을 따라 나서지 않은 신하들을 소집하여 불끄기를 진두지휘합니다. 이날 점심 때 일어난 불은 저녁에 진화가 되었고, 다행히 나라의 뿌리를 상징하는 종묘가 연소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18세기 말에 제작된 한양 지도 《도성도都城圖》에 방화 지역 표기.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www.heritage.go.kr

다음 날 세종은 화재에 대한 보고를 받고, 강원도에서 서울로 돌아갈 채비를 합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또 큰 불이 일어납니다. 지금의 구치소에 해당하는 전옥서典獄署와 행랑 여덟 간, 종루鍾樓(현재의 보신각) 동쪽의 민가 이백여 호가 연소됩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당시 한양 내 민가가 17,015호였는데, 이를 기준으로 본다면 이틀간 민가의 약 14%가 연소된 셈입니다. 피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화재로 인한 도둑이 기승을 부렸는데, 불이 번지지 않은 집에서도 황급히 피난하다가 재산을 전부 망실했습니다.

 

서울은 극도로 혼란한 상황이었겠지요. 이에 세종은 화재를 입은 백성들에 대한 식량・치료・장례 등의 지원, 그리고 집 복구를 위한 재목을 마련할 방도를 지시합니다. 이처럼 긴급 구제책을 실시하는 한편, 다음과 같이 나중을 위한 체계와 기반시설을 구축합니다.

 

임금이 다음과 같이 명령을 내렸다. “서울의 행랑에 방화벽을 쌓고, 도성 안의 도로를 넓혀 사방으로 통하게 만들라. 궁궐 담장이나 돈·곡식이 있는 관청들과 가까이 붙어 있는 가옥을 잘 헤아려 알맞게 철거하라. 행랑은 10간(1간≒1.8m) 마다 개인 집은 5간 마다 우물을 하나씩 파고, 관청들 안에는 우물을 두 개씩 파서, 물을 저장해 두라. 종묘 및 대궐의 안과 종루의 문에는 소방 기구를 만들어 비치해서, 화재가 발생하면 바로 달려 나가 끄게 하라. 군인과 노비가 있는 관청들에도 불을 끄는 여러 장비를 갖추었다가, 화재 소식을 들으면 각각의 소속인들을 동원해 가서 끄게 하라.” (세종실록 8년 2월 20일)

 

위와 같이, 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건물에 방화벽을 쌓고, 우물을 파서 소방용수를 확보하며, 소방 기구를 비치합니다. 또한 도로를 확장해 소방도로를 확보합니다. “병오년(세종 8년) 화재가 난 뒤로......민가에 도로를 개통한 까닭으로 이 실화失火에 사망한 자가 없다”는 세종 13년의 자체 평가에서 드러나듯이, 이 방침은 효용성이 드러납니다.

또한 불탄 가옥의 보수를 위해, 특별히 가마를 설치해 싼 값에 기와를 보급합니다. 당시 기와가 고가였기 때문에 서민들은 대개 띠·짚·억새 등으로 지붕을 얹었고, 이는 도시 미화뿐 아니라 화재 방비에 취약한 터였습니다. 이처럼 앞으로 또 발생할지 모를 화재에 대비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했습니다.

 

가장 획기적인 정책은 지금의 소방청과 같은 소방 전담 기구 ‘금화도감禁火都監’을 신설하고, 24명으로 조직을 구성한 일입니다. 아울러 금화군禁火軍(현재의 소방관)이 통금시간에도 출동할 수 있도록 신분증을 제공하는 등 상설기관으로서 소방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합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 5년 뒤인 세종 13년, 금화군에 대한 정책을 보강합니다. 급수를 지원해줄 인원과 소방장비 지급에 대한 세부 사항, 그리고 소방에 공로가 있는 자의 포상책 등을 국가 차원에서 마련합니다. 그러나 인력이 타 부처의 일을 겸직하는 한계가 있었지요. 조직원 중 8명을 금화도감의 일을 전담시키는 등 인사직제를 개편합니다. 제도도 중요하지만 결국 일은 사람에게 달렸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화재의 원인인) 음양이 조화를 잃은 것은 내가 부덕不德한 탓이로다. 내가 비록 변변치 못하나, 대신들이 도와준다면 천재지변도 없어질 수 있다.” (세종실록 8년 2월 28일)

 

전통시대에는 위정자가 마음을 다하지 않으면, 하늘이 천재지변을 통해 성찰의 기회를 준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세종은 당시에 통용되던 이러한 사고도 부정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사람이 온 마음을 다해 사태를 해결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진실로 사람이 제 할 일을 다한다면[人事旣盡], 천운이 따르지 않더라도 재해를 막을 수 있다.” (세종실록 26년 윤7월 25일)

 

2019년 강원도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의 진압을 위해 전국에서 출동한 소방차의 행렬. 출처 : 연합뉴스 https://bit.ly/3bPlGIA

대통령 공약사항 중 하나였던 소방청 독립이 지난 2017년에 이루어졌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지난 박근혜 정부는 소방방재청을 해체하고, 신설한 국민안전처에 소방 사무를 흡수시킨 바 있는데요. 문재인 정부에서 국민안전처를 폐지하며, 행정안전부 소속으로 소방청을 신설한 것입니다. 소방 조직이 독립 기구로 개편된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이라고 합니다.

 

이어서 올해 4월 1일,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나뉘었던 소방 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일원화했습니다. 최근까지 대부분의 소방관이 지방공무원의 신분이었기에, 지방자치단체의 부족한 예산으로 인한 고충이 컸습니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목장갑을 끼고 화재현장에 나선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리기도 했지요. 그런 가운데에도 소방 공무원들은 인명을 구하기 위해 애써왔습니다. ‘사람이 제 할 일을 다하기人事旣盡’ 위한 환경을 국가는 조성해주어야 합니다. 기구가 소방청으로 격상된 데 이어, 소방 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된 만큼, 국가가 소방관의 안전과 자존감을 지켜주기를 기대합니다. 소방관은 국민을 보호하는 국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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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기념일이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기다리는 날이 있습니다. 발렌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가 여기에 속할 텐데요. 로마의 ‘발렌티노 성인St. Vanentine 축일’을 일본의 한 제과회사가 왜곡시켰다는 지적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초콜릿이나 사탕 등을 이성에게 선물하며, 이 두 날을 사랑 표현의 기회로 삼습니다.

옛 사람들은 어떻게 이성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을까요? 약 삼천년 전의 사람들이 남긴,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 『시경詩經』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投我以木瓜, (그녀가) 나에게 모과를 던져 주기에,

報之以瓊琚. 나는 아름다운 옥 노리개를 드렸습니다.

匪報也, 그것은 보답이 아니라,

永以爲好也. 오랫동안 좋은 사이가 되고 싶어서이지요.

 

投我以木桃, 나에게 복숭아를 던져 주기에,

報之以瓊瑤. 나는 아름다운 옥을 드렸습니다.

匪報也, 그것은 보답이 아니라,

永以爲好也. 오랫동안 좋은 사이가 되고 싶어서이지요.

 

投我以木李, 나에게 오얏(자두)을 던져 주기에,

報之以瓊玖. 나는 아름다운 패옥을 드렸습니다.

匪報也, 그것은 보답이 아니라,

永以爲好也. 오랫동안 좋은 사이가 되고 싶어서이지요.

 

(『시경詩經』 「모과木瓜」)

 

(영친왕비 패옥.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홈페이지 www.gogung.go.kr)

옛날 중국에서는 여성이 마음에 드는 남성에게 과일을 던지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서진西晉 시대의 문인이자 중국 ‘초절정 미남’의 대명사로 꼽히는 반악潘嶽이 나타나면, 온 동네 처녀들이 몰려와서 어찌나 많은 과일을 던졌던지 수레(지금의 자가용)가 가득 찼다고 하는데요. 이 이야기는 ‘반랑(반악)에게 과일을 던지다’라는 ‘척과반랑擲果潘郎’, ‘과일을 던져서 수레가 가득하다’는 ‘척과영거擲果盈車’ 등의 고사성어를 남겼습니다.

 

선물을 받으면 이에 대한 응답이 있어야 되겠지요? 위의 『시경』 구절을 보면, 과일을 받은 남성이 허리에 차고 있던 옥을 여성에게 선사합니다. 옛 사람들은 허리띠에 옥을 달고 다녔는데, 이를 패옥佩玉이라 합니다. 과일을 준 상대에게 옥을 선물하는 행위, 마치 여성이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면, 남성이 화이트데이에 명품백으로 응하는 것과 비슷할까요?

 

『시경』 속 남성은 자신의 행위가 기계적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라, 오랫동안 인연을 다져가기 위한 정표情表라고 말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대하겠다는 대인배의 마음이 엿보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과일을 던졌을까요? 고대로부터 여성을 꽃에, 남성을 벌 혹은 나비에 비유하는데, 그들의 조합으로 열매가 열리지요. 결국 ‘배필이 되어 당신과 사랑의 결실을 맺고 싶어요’ 라는 고백으로 보입니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과일을 던지실 분이 계시다면, 맞아도 안 아픈 과일로 잘 고르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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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원연구소공감에서 진행하고 있는 세종인문시리즈를 소개합니다.

 

1. 세종의 고독력孤獨力 경영 – 세종을 세종으로 만든 힘 (고독력, 셀프리더십)
2. 세종의 오득五得 공감 – 세종리더십의 다섯 가지 열쇳말 (리더십)
3. 세종시대의 행복론 공향共享 - 더불어 살맛나는 세상 만들기 (행복자산)
4. 창의는 위기 속에서 꽃핀다 – 세종의 위기관리 리더십 (위기관리, 창의성)
5. 아름다움이 적을 이긴다 – 리더의 멋과 힘 (시각적 메세지, 리더십)
6. 식솔력食率力 - 왕의 밥상 속에 펼쳐진 리더십 (조선 음식문화, 리더십)
7. 이도李祹 씨네 가족 이야기 – 세종 가족의 소통법 (가족소통)

 

본 강좌는 기업・대학・기관 등에서 16년간 소통・인문학・세종리더십 등을 강의해왔고,
커뮤니케이션 석사 및 동양철학 박사(수료)이며,
방송・음악회를 통해 대중과 만나온 세종이야기꾼 오채원이 진행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 파일을 참조해주십시오.

이 외에 문의 사항이 있으면 언제라도 연락 주세요.

 

세종이야기꾼 오채원 :: 010-8014-7726 :: chewonoh@gmail.com

세종인문시리즈_강의기획안_오채원연구소공감_2020.pdf
0.36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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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에 중국에서 신종 전염병의 발생이 보고된 이래,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정국’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전염병을 역병疫病, 역질疫疾, 괴질怪疾 등으로 불렀는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무려 1,600건 이상의 관련 기록이 있습니다. 유독 전염병이 크게 돌던 시기는 대체로 전쟁이나 이상 기후로 인해 농사에 실패하여 식량이 부족한 때였습니다. 굶주려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돌게 되는 것이지요.

전통시대에는 역병을 역귀疫鬼라는 귀신이 일으킨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매해 연말에는 아래의 실록 기사처럼, 역귀를 몰아내는 계동대나의季冬大儺儀를 궁궐에서 거행했습니다.

 

군기감軍器監(군수물자를 제작하는 국가기관)에서 화약을 궁궐의 뜰에 설치해 역신을 쫓아냈는데, 이는 연례 행사였다. 이에 여진족과 일본 사신에게 구경하게 했는데, 불화살이 섞여 발사되자, 모두 놀라고 두려워서 부산하게 달아나다가 옷이 불타버린 자도 있었다. (태종실록 131229)

 

이는 사전에 전염병을 대비하기 위한 국가적 행사였습니다. 현재의 청와대처럼 조선시대에도 중앙 정부가 전염병 관리의 컨트롤 타워였거든요. 이렇게 역귀를 물리치기 위한 의례를 치렀음에도 전염병이 돌면, 공무원들을 각 지방으로 파견해 제사를 지내서 역신을 달랬습니다.

그래도 역병에 걸리면 역신이 따라오지 못하게 도망을 다니는데 이를 피병避病이라 합니다. 세종 2(1420) 여름에 학질(말라리아)에 걸린 어머니 원경왕후를 세종이 직접 모시고 궁궐을 나와서 한 달 넘게 거처를 옮겨 다니느라 고생한 기록들이 있습니다. 역신이 모르게 하느라 캄캄한 밤에 이동하다가 엉뚱한 집에 들어가기도 했고요. 심지어는 원경왕후의 남편이자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도 모자의 행선지를 뒤늦게야 알게 되었을 정도입니다.

 

전통시대라고 하여 이처럼 전염병에 비과학적으로 대응한 것만은 아닙니다. 우선, 민생 안정을 위해, 백성의 군역軍役·부역夫役을 정지하고 공납貢納을 연기, 즉 군복무와 세금납부의 의무를 일시 감면했습니다. 보건위생 차원에서 보자면, 역병으로 사망한 자는 임금이 거주하는 서울 성 밖에 묻거나 화장하고, 환자는 성 밖으로 격리시켰습니다. 지방에 의사를 임시 파견하고, 현재의 질병관리본부에 해당하는 활인서活人署와 국립중앙의료원 격인 혜민서惠民署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굶주린 이들을 보살폈습니다. 이를 구료救療라고 하는데, 국가에서 제정한 표준 매뉴얼에 따라 성실하게 백성을 구료하지 않거나, 현황에 대해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관리는 문책했습니다.

 

각도의 감사에게 임금의 뜻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민간에 전염병이 발생하거든 구제하여 치료해 주라는 조항을 여러 번 법으로 세웠는데, 각 고을의 수령들이 하교의 취지를 살피지 않는다. 올해는 전염병이 더욱 심하건만 수령들이 구료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니, 일찍이 내린 각년의 조항을 살펴서 백성들을 구료해 살리도록 마음을 쓰라.” (세종실록 14421)

 

조선이 미개한 국가여서 전염병이 돌면 제사를 지내거나 역신을 쫓는 행사를 치른 것이 아닙니다.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면, 국가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 해야 했음을 드러내는 사건들일 뿐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전염병도 결국 마음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서 가짜 뉴스에 현혹되기보다, 안전보건수칙을 지키며 내 이웃을 돌아보는 과학적이고 또 인간적인 태도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요즘입니다.

 

(‘결국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따스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는 이동학 님의 자가격리 소회와 관련 사진.

출처 : 수원시 블로그 https://blog.naver.com/suwonloves/221814342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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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마 콘서트 <동구릉, 영화 음악으로 거닐다>에서 이야기꾼으로 섰습니다.
동구릉에는 태조, 문종, 선조, 영조 등 대중에게 많이 회자되는 임금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많은 영화들이 이들을 주요 인물로 삼거나, 그들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요.
선조가 등장하는 <명량>, 영조의 <사도> 등 영화 OST, 그리고 창작곡으로 꾸민 음악회를 진행했습니다.
저는 늘 그렇듯 그들에 대한 조선왕조실록 속 이야기들을 들려드렸습니다.

영화 영상과 음악을 함께 올리니 무대가 한층 웅장하더군요.

클래식 앙상블과 국악실내악 연주단의 협연이 조화로워, 그 어느 때 보다 소리도 풍성했습니다.
관객 분들이 600석 대극장을 가득가득 채워주시고, 박수 많이 보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일시 : 2019.11.16(토) 오후 7:00-8:10
* 장소 : 구리아트홀 코스모스 대극장
* 주최 : 구리시
* 주관 및 문의 : 문화예술감성단체 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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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 스토케(Marianne Stokes), 소녀와 죽음, 오르세 미술관

작년 <들리는 사진관 : 영정사진 프로젝트>에 기획자로 참여하며, 영정사진을 찍는 20대들이 제법 있음을 알게 됐다. 그들은 특별한 질병이 있거나, 히키코모리도 아닌, '정상적' 범주의 사람들이다.
최근에 고독사(나눔과나눔의 박진옥 사무국장님 왈 '고립사')한 30대 여성에 대한 뉴스를 접했다. 동거인인 오마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나도 그와 처지가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하니 먹먹하다. 과거에는 고독사라는 것을 주로 궁핍한 노년기와 연결시켰지만, 이제는 고시원 혹은 원룸 등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거나 영위하는 젊은 층의 삶의 한 양상으로 포착하기 시작했다. 관련 자료를 찾다보니, 한국과 일본의 두 시각이 흥미롭다(물론 이들이 각 국의 대표선수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숨진 채 발견된 30대 여성...고독사는 사회적 범죄다
http://bit.ly/2mqcK7W

 

“완만한 자살” 일본 젊은층 고독사 늘고 있는 까닭은?
http://bit.ly/2m3VGEC

에곤 실레(Egon Schiele), 죽음과 소녀, 오스트리아 미술관

두 칼럼은 큰 틀에서 사회구조적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첫 번째 칼럼의 '고독사는 사회적 방임이며 더 나아가 살인'이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고독사의 예방책으로 '가족 해체를 막자'는 주장은 현재의 사회 변화상으로는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가족의 형태와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두 번째 칼럼에서는 격무에 의한 극심한 스트레스가 ‘자기 방임’을 부르고, 이것이 젊은 층의 고독사로 이어진다고 진단하였다. 연간 노동시간이 OECD 평균인 1759시간보다 265시간이 더 길고(2017년 기준), 이에 따른 과로사가 사회적 문제로 다뤄지는 우리나라에도 시사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복지 차원의 논의를 다루기보다, 개인이 관계망 유지에 힘쓰라는 이 칼럼의 해결책은 문제의 본질을 축소시키는 인상을 준다.
이제 개인에게 '어금니 꽉 깨물고 살라'고 다그치지 말고, 우리 함께 논의해야 할 때이다. 아니, 이미 늦은 감이 있다.

 

한스 발둥 그리엔(Hans Baldung Grien), 인생의 세 시기와 죽음, 빈 미술사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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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살아 숨 쉬는 향교·서원 문화재 활용사업’의 일환으로 간성향교에서 진행되어온 음악회 <선비의 향기, 예술로 피어나다>. 올해에도 저는 사회자로 함께했습니다.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 한양에는 성균관이라는 공립 고등교육기관, 그리고 동서남북 네 곳에 4부학당이라는 공립 중등교육기관이 있었습니다. 지방에서는 향교라는 공립 중등학교가 운영됐습니다. 사학교육기관으로는 서원이 있었고요.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목적으로 운영된 이 간성향교는 세종 2년인 1420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간성읍 상리 쇠롱골(당시 용연동)에 창건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무려 600여 년 전에 지어진 유서 깊은 공간에서 선비의 덕,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관객께 전해드리고, 또 그와 관련된 음악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이렇게 간성향교는 오랜 역사 위에 차츰차츰 새로운 이야기를 채워나가며, 유구한 역사를 이어가겠지요. 그 역사의 한 자락에 참여하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 일시 : 2019.8.31. 오후 7:00-8:30

* 장소 : 강원도 간성향교

* 출연 : 오채원(사회), 강숙현(정가), 이신예(소리), 국악실내악 여민(연주)

* 후원 : 문화재청, 강원도

* 주최 : 고성군

* 주관 : 문화예술감성단체 여민

* 참조 기사 : http://www.xportsnews.com/?ac=article_view&entry_id=1160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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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음악회 진행은 참으로 배부른 시간이다.
조명에 몰려든 날벌레를 입으로 코로 오백 마리 흡입해댄 탓만은 아닐 것이다.
무대 옆 대기석, 그 어느 관객보다 가까이에서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시공간을 초월한 그 어딘가로 마냥 빠져든다.
물론 진행이라는 내 본분을 다하려니, 아주 잠시만 선택적으로 정신줄을 놓을 수밖에 없다.

 

작년부터 진행해온 달빛음악회 <황후의 잔치 - 명성야연>.
이날은 관객들의 박수 인심이 유독 좋아서, 원고를 읽기보다 대화하듯이 만나고 싶었다.
덕분에 실수도 많았다.
예전 같으면, 연출자께 송구해서 집에 오는 내내 차창에 머리를 박았을 것이다.
하지만 소통이란 정확한 정보만으로는 불충분함을 그분도 알아주시리라 믿는 뻔뻔함이 이제는 생겼다.
나이 먹을 수록 피부가 얇아진다는데, 내 마음은 안티에이징이 잘 되는지 점점 두꺼워진다ㅎ

 

* 일시 : 8월 24일(토) 19:30~21:00
* 장소 : 여주 명성황후 생가

* 주관 및 사진제공 : 문화예술감성단체 여민

* 관련 기사 : http://bit.ly/2PohTLN

 

여주시, 제4회 달빛음악회 황후의 잔치 ‘명성야연' 개최 #MoneyS

‘명성야연' 장면. / 사진제공=여주시 2019년 생생 문화재 사업 ‘세종과 명성황후의 숲에서 더불어 생생지락(生生之樂) 하기’ 프로그램 중 <제4회 달빛음악회, 황후의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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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릉 봉분 부근에서 내려다 본 풍광)

세종 4년 임인壬寅에 임금(그때는 상왕, 태종)이 승하하시려 할 때 “가뭄이 지금 심하니 내가 죽은 뒤에도 아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이날 비가 오도록 하겠다.” 라고 하교하였다. 그 뒤로 매양 제삿날이면 반드시 비가 왔기 때문에 세상에서 ‘태종비[太宗雨]’라 하였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조야첨재朝野僉載」)

 

(혼유석 아래의 태종비 구멍)

아들 세종을 위해 아버지 태종은 저 세상에 가서도 비를 내리겠다는 유언을 남겼고, 그의 기일 즈음의 비를 조선시대 사람들은 '태종비'라 불렀다.
태종-원경왕후의 헌릉, 순조-순원왕후의 인릉 답사를 앞두고 날이 더워서 염려했는데, 간간이 내리는 비로 적당히 시원하고 싱그러웠다.
음력 5월 10일은 지났지만, 찾아간 우리를 위해 태종께서 비를 내려주셨을까?

 

(왕릉 지킴이의 설명을 듣는 중)

한 시간 가량의 헌릉과 인릉 답사를 마치고, 조선왕조실록 속 관련 기사를 엮어서 [헌인릉에서 세종을 만나다] 라는 발제를 나누었다.
세종을 공부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그것을 토대로 사람들에게 감화력을 줄 수 있도록 더욱 정진하자는 결론에 공감들 해주셔서 감사했다.

 

(내가 준비한 '헌인릉에서 세종을 만나다' 발제문)

학창시절에 소풍이나 사생대회 차 올 때마다 '왜 우리는 넘의 무덤에서 노나?' 심드렁했는데, 실록을 만난 이후로는 왕릉 답사에 재미가 새록새록 생긴다.
2009년 6월 27일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조선왕릉.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는데, 지역민들의 공원으로 그치지 말고, 그 의미를 보다 널리 공유하길 바란다.
그럼 더 열심히 공부하고 사람들과 소통해야겠지.

 

(홍주희 님이 찍어주신 사진)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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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조선왕릉문화벨트 조성사업에 학술용역으로 참여하며 처음으로 다녀왔던 태릉인데, 그곳에서 지난 6/29(토)에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바로 [태강릉 이야기 숲 속 음악회].

며칠간 비가 오락가락했고 당일 아침에도 비를 보였기에, 행사가 취소되거나 악조건 속에서 음악회를 진행해야 하나 걱정했습니다.
다행히 더없이 쾌적한 날씨 속에서, 호응 좋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날의 주인공은 중국의 측천무후에 비견되는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였습니다.
"사신(사관)은 논한다. 윤씨(문정왕후)는 천성이 억세고 사나우며, 글을 알았다......윤비(尹妃)는 사직의 죄인이라 할 만하다. 《서경(書經)》 목서(牧誓)에 ‘암탉이 새벽에 우는 것은 집안의 다함이다[牝雞之晨, 惟家之索].’ 하였으니, 윤씨를 이르는 말이라 하겠다." (명종실록 20년 4월 6일)
이렇게까지 혹독한 사관의 평가를 받은 사람이 조선왕조실록을 통틀어 몇이나 될까요?
이는 꽤 높은 수준의 정무감각을 보이며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던 '암탉'에 대한, 당시 먹물깨나 먹었다는 남성들의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난 표현이라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역사콘텐츠에 발을 살짝 담근 여성으로서, 역사 기록에서 소거되거나 왜곡된 여성의 목소리를 드러내자고 문제제기하는 자리에 함께하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조선왕릉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10주년이 되는 해라 더욱 뜻 깊었던 자리였고요.

 

 

* 일시 : 2019.6.29(토) 16:00-17:30

* 장소 : 서울시 노원구 태릉

* 주최 :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조선왕릉 중부지구 관리소

* 주관 : 문화예술감성단체 여민

* 사진제공 : 문화예술감성단체 여민

 

Posted by 오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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