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오채원연구소공감]대표 :: 세종이야기꾼 :: 실록연구자 :: 소통 디자이너 :: 010-8014-7726 :: chewonoh@gmail.com 오채원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228)
오채원연구소공감 (60)
방송 (18)
실록공감 - 나와 세종을 실록實錄하다 (51)
세종 유통분流通分 (14)
소통 강의노트 (12)
전문강사 포럼 (7)
삶.사람.생각 (20)
실록 읽어주는 여자 (16)
문화 공감 (28)
Total
Today
Yesterday

8/5(토) 저녁에 음악회 [ 왕곡마을에서 동주를 만나다 ]의 사회자로 여러분을 만납니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윤동주(1917-1945년) 시인을 기리는 음악회를, 영화 <동주>의 주촬영지인 강원도 고성의 왕곡마을에서 진행합니다.


1. 19:00-20:00 윤동주 시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 시 낭송, 음악이 어우러진 콘서트


2. 20:00-22:00 영화 <동주> 상영


* 왕곡마을 관련기사 :


http://www.kwnews.co.kr/nview.asp?s=601&aid=216012900024


http://news.hankyung.com/article/201606293302a?nv=o


-출처 : 중앙시사매거진 201508호(2015.07.17)-


Posted by 오채원
, |

5/9에 강의했던 세종 3년 차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해의 열쇠말을 저는 ‘실정實情’으로 설정했습니다.

백성들이 실제 처한 상황,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된 정서를 파악하고자 노력하는 신입 군주의 노력이 돋보인 해였기 때문입니다.


뉴스에 자주 오르는 보직으로 민정수석이 있습니다.

이때의 민정은 '民政'이 아니라 '民情'입니다.

즉 민중의 뜻을 파악하고 공유하는 업무가 바로 민정수석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정치뿐 아니라, 우리네 삶에서 원칙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실제, 현실에 부합하는가?’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공감능력이 필요합니.

앞으로 세종이 신료들, 백성들과 어떻게 공감해나갈지 기대해주세요.



Posted by 오채원
, |

[ 실록공감 05_세종과 고기사랑 ]


-----------------------------------------------------------------------------------------

[共享生生之樂, 세종실록 24년 1월 7일]

세종과 더불어, ‘나와 다른 당신’과 공감하고 싶습니다.

-----------------------------------------------------------------------------------------


“세종이 고기를 좋아했다면서요?”

많은 분들이 제게 ‘세종 고기덕후설’의 진위에 대해 물어옵니다.

우선, 답은 ‘예’입니다.

실록을 보면, 세종의 ‘고기 사랑’은 아버지의 입을 통해 주변인들에게 널리 알려집니다.

“주상(세종)이 젊었을 때부터 고기가 아니면 밥을 먹지 못했다”고 태종이 증언한 이후(세종실록 2년 8월 29일), 주변인들은 열심히 고기를 챙기지요.


고기는 맛있기도 하지만, 여러 효용 가치를 내포합니다.

“먹는 것은 백성의 근본이 되고, 곡식은 소의 힘에서 나오므로” 농경사회에서 소는 무척 귀한 존재였습니다.(세종 7년 2월 4일)

국법으로 그 도살과 판매를 관리할 정도였지요.(세종 7년 2월 8일)

또한 닭・꿩・양의 고기는 의원醫員들이 갈증을 멎게 하는 약으로 세종에게 추천한 식품이었습니다.

그러나 닭은 이어댈 수 없고, 꿩은 사냥해야 하고, 양은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는 등의 이유로, 너무 약이 호사스럽다며 받아들이지 않으셨지요.(세종실록 13년 3월 26일)


옛사람들은 불행한 일을 맞았을 때 삼가는 모습을 보이며, 이러한 고기와 같은 고급 음식을 드시지 않았습니다.

세종도 어머니인 원경왕후(세종실록 2년 8월 29일), 태조의 맏딸 즉 고모인 경신공주(세종실록 8년 3월 25일), 이복동생인 혜령군(세종 22년 6월 29일), 며느리인 세자빈 권씨(세종 23년 7월 29일) 등 가족 및 친인척의 상사를 당했을 때에 짧게는 며칠 길게는 한 달 이상 고기 없이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함께 일해 온 신료의 초상에도 반드시 3일 간은 소찬을 드셨습니다.(세종실록 8년 3월 25일)


세종은 초상 외에도 이상기후나 흉작을 맞으면, 고기 반찬을 정지시킵니다.

신하들은 태종의 유교를 언급하며 고기를 드시라 간청하지만, 세종은 이를 강력하게 뿌리칩니다.

이처럼 본인은 갖가지 이유를 대며 소찬素饌을 고집하지만, “나이 많은 늙은 대신은 하루라도 고기가 없어서는 안 된다”며 주변인의 섭생을 챙깁니다.(세종실록 28년 3월 27일)


사랑하는 부인 소헌왕후가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났을 때의 일입니다.

본인이 소찬을 드시는 것은 물론, 자녀들에게 묽은 죽만 마시게 하고 5일만에야 비로소 밥을 먹게 하셨던 분이(세종실록 28년 3월 24일), 늙은 신하들에게는 “50세 된 사람은 고기가 아니면 배부르지 않다”며 고기를 권합니다.(세종실록 28년 3월 28일)


이는 맹자가 한 말과도 맥이 닿는데요.

“50세가 되면 비단 옷이 아니면 따뜻하지 않고, 70세가 되면 고기가 아니면 배부르지 않다. 따뜻하지 않고 배부르지 않은 것을 ‘헐벗고 굶주림[동뇌凍餒]’이라 한다.”(『맹자孟子』「진심 상盡心上」)

맹자는 노인을 잘 보살피는 것을 ‘왕도정치王道政治’라는 이상향의 근본으로 제시한 바 있는데요.

세종 또한 약자가 ‘배부르고 등 따신’ 사회를 추구했습니다.


오늘(7/12)이 초복初伏으로, 무더위의 개시를 알리는 절기입니다.

‘보양식을 먹는 날’을 넘어, 노약자의 사망률이 급증하는 시기가 이제 시작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고기 덕후’라면, 고기 먹기 힘든 이들의 처지를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종이 고기를 좋아했다면서요?”

예, 앞서 본 것처럼, 세종에게 ‘고기는 사랑입니다’.


* 참고문헌 :

1.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2. 아시아경제, 2017-07-12,「어르신들 원기회복 위한 초복 삼계탕 봉사」.


(사진 : 아시아경제)


Posted by 오채원
, |

지난 4/25에는 재위 2년째를 맞은 세종을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때 어머니인 원경왕후가 돌아가시는 큰 일을 겪는데요.

맏이 양녕대군 편에 서서 세자 교체를 반대했던 어머니께 보이는 세종의 효성에 아버지 태종이 감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내가 대비와 주상의 간 곳을 몰랐는데, 오늘에야 알고보니 주상이 대비의 학질()을 근심하여 몸소 필부의 행동을 친히 하여, 단마(單馬)로써 환자 두 사람만을 데리고 대비를 모시고 나가 피하여 병 떼기를 꾀하니, 심히 그 효성()을 아름답게 여긴다." (세종2/6/7)



여기에 대해 중용中庸』의 '성誠' 개념을 연결하여 이날의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誠者,天之道也;誠之者,人之道也。(성이라는 것은 하늘의 도이고, 성을 행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

정말 정성 가득한 세종의 모습이 그려진 해였습니다.



Posted by 오채원
, |

[ 실록공감 04_세종과 더위 ]


------------------------------------------------------------------------
[共享生生之樂, 세종실록 24년 1월 7일]
세종과 더불어, ‘나와 다른 당신’과 공감하고 싶습니다.
------------------------------------------------------------------------


지난 5월부터 ‘덥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나날이 이어지더니, 오늘은 급기야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다는 ‘긴급재난문자’까지 받았습니다.
재난 수준의 더위를 세종은 어떻게 해결하셨을까요?


때는 바야흐로 52세 되던 해의 여름.
세종이 “전에는 더위를 무서워하지 않았는데, 몇 년 전부터 더위가 들기 시작했다”고 고백합니다.
아마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 상태에서도 훈민정음 창제와 그 후속 작업들에 매진하며 체력이 고갈되셨을 듯합니다.
그러니 더위 무서운 줄 모르고 살던 분이 ‘요즘 들어 나도 더위를 먹더라’고 말씀하셨겠지요.


“손으로 물장난을 했더니 더운 기운이 저절로 풀렸다.”
참으로 소박하게, 세종은 더위 탈출법으로 해수욕도 뱃놀이도 냉수마찰도 아닌, 물에 손 담그기가 최고라고 추천합니다.
이마저도 혼자 즐기기 미안하셨는지, 가장 열악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죄수가 감옥에 있으면, 더위가 들기 쉬워 간혹 생명을 잃는 수가 있으니, 참으로 불쌍한 일이다.”


세종은 입으로만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즉각 행동으로 옮깁니다.
“더운 때가 되면, 동이에 물을 담아 감옥에 놓고 자주 물을 갈아서, 죄수에게 간혹 손을 씻게 하여, 더위 먹지 않게 하는 것이 어떠한가?” 
죄수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복지정책을 제안하고는 이것이 상시 운영되도록 법제화하고자 합니다.
“예전에 이 법이 있었는지 상고하여 아뢰라”고 집현전에 하명하시지요. (세종실록 30년 7월 2일)


그리고는 그 다음 달에 현재의 시도지사에 해당하는 각도의 감사들에게 명을 내립니다.
“1. 매년 (음력) 4월부터 8월까지는 감옥에 새로 냉수를 길어다가 자주자주 바꿔 놓을 것.
1. 5월에서 7월 10일까지는 한 차례 희망자에게 몸을 씻게 할 것.
1. 매월 한 차례 희망자에게 머리를 감게 할 것.
1. 10월부터 정월까지는 감옥 안에 짚을 두텁게 깔아 보온에 힘쓸 것.
1. 목욕할 때에는 관리와 옥졸이 직접 검찰하여 도망하는 것을 막을 것." (세종실록 30년 8월 25일)


7월 7일은 소서小暑, 즉 ‘작은 더위’라 불리며,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때입니다.
장마 뒤의 후텁지근함이 불쾌지수를 높이는 이런 때일수록, 나와 만나는 이에게 싱긋 웃음을 보여줄 수 있는 여유, 그리고 나보다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 ‘시원한 온정’을 보내는 배려를 보이면 어떨는지요?
‘내가 이렇게 더운데 다른 사람들은 괜찮을까?’ 염려하던, 나의 고통을 미루어 남을 배려하는 세종의 마음을 떠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 참고문헌 : 
1.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2. 뉴시스, 2017-06-14, 「‘빨리 온 무더위' 노인 등 취약계층 폭염 비상」. 
3. 민중의소리, 2017-07-05, 「초복, 30도 넘는 무더위...대체 어떤 날이길래?」. 
4. 브레이크뉴스, 2017-06-23, 「경기도, 무더위 쉼터 6천여 개 운영…취약계층 ‘집중 케어’」. 
5. 시민일보, 2017-06-29, 「중랑구 면목3·8동 주민센터, 7·8월 무더위 취약계층 얼음물 제공」. 
6. KBS뉴스, 2017-06-20, 「때 이른 무더위…여름이 두려운 쪽방촌」.


(사진 : 민중의소리)


Posted by 오채원
, |

지난 4/18 [실록공감-나와 세종을 실록하다] 시간에 강의했던 내용을 첨부합니다.

재위 1년째 되던 해는 세종이 이제 걸음마를 해나가는 때였습니다.

서슬퍼런 아버지 태종의 주변 정리가 즉위년에 있었고, 그 다음해에는 차분하게 업무를 익혀가는 세종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발언을 통해 신하들의 정치적 견해, 사람 됨됨이가 조금씩 드러나는 것이 보였지요.

그래서 세종 1년의 열쇠말을 '지인知人'으로 정하였습니다.

맹자는 지인, 즉 '사람의 됨됨이를 아는 법'으로 언어, 표정, 사상에 대한 시비, 선악, 진위, 득실의 변별을 들었습니다.

앞으로 세종이 말을 통해 본, 신하에 대한 평가가 실록에 기재될 것입니다.



Posted by 오채원
, |

조선시대의 지방교육기관인 향교가 변화하고 있다.
'어디 지집이 감히 향교에!'라는 어르신은 여전히 계시다고 들었지만, 1420년에 창건된 강원도의 간성향교는 비교적 개방적으로 보인다.
2년째 [간성향교, 선비의 향기를 만나다]에 참여하며 느낀 점을 몇 가지 적어본다.



작년에는 이곳에서 3주간 선비리더십을 강의했다.

멀리 서울에서 왔는데 물회라도 한 그릇 드시고 가라는 어르신들의 정이 참으로 감사했다(그리고 물회가 질리도록 실했다ㅎ).
수강생 분들 중에는 훈장님이 계셨는데, 내 짧은 소견에도 '선생님' 대접해주시는 모습에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왔다.
그분들이 올해는 석달간 강습 받으신 시조창을 무대에서 선보이셨고, 나는 사회자로 그분들을 소개할 수 있어서 뿌듯했다.



올해는 하루에 두 가지 행사가 진행되었다.

1부 <선비의 향기, 예술로 피어나다>에서는 전통 음악 중심의 음악회, 2부 <선비의 향기, 랩으로 말하다>에서는 청소년 랩퍼들의 배틀이 펼쳐졌다.

2부의 참가자들은 전국에서 130여 명이 응모하여, 무려 17:1의 경쟁을 뚫고 8명이 결선에 진출하였다.
나에게는 1부 사회자, 2부 심사자로 서는 임무가 주어졌다.



토론 심사는 종종 해왔지만, 랩을???

랩 플로우, 딜리버리 등은 잘 모르지만, 주제와의 연관성, 표현의 창의성 등은 토론 심사와도 일맥상통한다.

선비정신이라는 주제를 얼마나 이해하고, 연구하고, 자신의 용어로 녹여냈는지 주안점을 두고 심사하였다.
음악에 강점이 있는 현직 랩퍼 심사자들과 나는 그렇게 협력하고자 했다.
《대학大學》의 '삼강령 팔조목三綱領八條目'을 나름으로 이해한 참가자, 최근 정치의 시사점을 비꼬아 옛 선비와 연결한 참가자, 퇴은退隱한 선비에 공교육에서 이탈한 자신을 비교한 참가자 등 10대 랩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선비정신을 노래했다.



앞으로도 이러한 세대간 소통, 문화간 소통, 지역간 소통, 이성간 소통 등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명륜당明倫堂 편액, 태극기, 그리고 반바지 입은 청소년이 어우러진 광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전통을 '고집'으로 이해하면 그 향기는 날아간다.




Posted by 오채원
, |